문화의 향기

나는 지휘자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진작 아무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오직 다른 이들로 하여금 얼마나 소리를 잘 내게 하느냐에 따라 능력을 평가 받을 뿐입니다. 이렇게 다른 이들 속에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깨워서 꽃피게 하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 아니겠습니까?

2001년 8월 어느 날, 나는 무대 위에 서있는 백발의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스턴 필하모닉의 지휘자 벤 젠더, 두 시간 반이 넘도록 원고 한 번 보지 않고 진행된 그의 리더십 강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일곱 살짜리가 피아노를 처음 배워서 어떤 곡을 연주한다면, 보통 이렇게 칩니다."

그는 띵 띵 띵, 한 음씩 끊어서 쳤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이 아이가 몇 년이 지나 피아노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이렇게 치죠."

그는 띵띵띵 띵띵띵, 한 소절씩 끊어서 쳤다. "자, 몇 년이 더 흘러 이 아이가 똑같은 곡을 또 치면 어떨까요?"

뚜르르르르....... 하면서 물결이 흘러가듯이 부드럽게 연주했다. 그는 피아노에서 일어나며 청중을 향해 물었다. "자,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가 원한 답은 '흐름(flow)' 이었습니다.

초보자는 악보대로, 한음 한음을 틀리지 않고 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음 자체는 틀리지 않겠지만 듣는 사람은 영 어색하고 우습기까지 하지요. 본인은 이런 것도 모르고, 땀 흘리면서 끝까지 치는 자신이 장할 뿐입니다.

그러던 아이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한 소절씩 묶어서 치고, 나중에는 곡 전체를 한 흐름으로 엮어서 조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분야든지 처음 시작할 때는 자기 전문 분야만 보이고, 교과서처럼 한음 한음 잘 치는 것만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과의 조화나 다른 분야와의 연결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차츰 성숙해지면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시간과 공간과 분야가 다른 것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사 벤 젠더는 우리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영원한 선물은 사랑과 격려라고 말했습니다.

벤 젠더가 지휘하는 보스턴 필하모닉에는 전 세계의 젊은 음악 천재들이 모여 있습니다. 간혹 등수에 민감한 학생들이 있는지라 그는 일단 첫 시간에 모든 학생들에게 A학점을 주고 시작했답니다.

"탁월한 천재들끼리 등수를 매기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차라리 그 정열을 예술을 연마하고 즐기는 데 쏟아야지요." 가슴이 부서져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위대한 연주를 할 수 없습니다.

벤 젠더의 이런 철학은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교수가 자신을 이미 A급 학생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높아졌고, 그래서 자신 있게 세상을 대하고 서로를 경쟁 상대가 아니라 협력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사랑은 고통받고 배신당할 것을 각오하는 것이고 상처를 준 사람을 빨리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쓰라림과 증오의 그림자를 가지고 살면 누구도 완전하게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장 좋은 점을 생각나게 하고 믿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최선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야말로 영혼을 움직이는 진짜 리더십이 아닐까요?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