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미술가 민병구.

오늘의 문화인물(32) 민병구 무대미술가

"공연 무대는 심오한 것입니다. 내면 깊숙하게 박혀 있는 것을 배우들이 표출해서 관객들 마음에 심어주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배우와 관객, 무대의 삼합이 중요하구요."

서울경기지역을 제외한 이남지역에서 민병구(42)는 독보적 무대미술가로 통한다. 특히 그만의 특유한 편안함과 안정감은 많은 무대연출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를 찾는 많은 연출가와 배우들이 공통되게 내놓는 말이 있다. '민병구 선생은 작품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요.'

# 다양한 이력이 불러온 무대미술

극단 새벽의 오셀로. 이 작품이 바로 무대미술의 첫 습작이었다. 졸업후 12년간 민병구 화실을 운영하며 틈틈이 인테리어 목수일을 하고 술집 벽화도 그리고 벽돌 쌓는 일도 해가며 87년부터 시작한 것이 무대미술이다. 이후 90년대 접어들며 청년극장 이창구 전 청주대 연극영화과 교수를 만난 것이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 계기가 됐다. 94년 무대에 올랐던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가 무대미술가로서의 인생길을 연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인테리어며 벽화작업, 건설현장의 넝마도 지어보면서 다양한 기술을 접한 것 또한 결국은 그의 활동에 양분이 돼줬다. 지금의 내수읍 입동리 고향에 운영하고 있는 대지 230평 건평 60평의 상상공장은 그야말로 웬만한 것은 죄다 있는 보물창고로 여겨진다.

연극, 무용, 국악, 이벤트, 뮤지컬, 판소리, 오페라, 마을경로잔치까지 한달에 열다섯개의 무대를 쉼없이 기획하고 재현하는 그로서는 그동안 만든 무대 수를 세는 것도 일이다. 연극으로 보자면 대본을 보고 밑그림을 그리고 연출가와 조율하며 완성하는 무대는 하나의 입체적인 미술작품에 다름아니다.

평면 그림을 하다가 입체를 하고 싶어 무대로 돌아섰다는 그로서는 종합예술로서의 무대미술은 매력 그 자체였다. 페인트에서 작화, 목수, 디자인, 제작소, 소품제작과 조각까지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기술만 30여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때로는 손수 기계도 고쳐야 한다. 평균 취침시간만 3시간. 고된 노동에 몸은 위험신호를 보낸지 오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쏟아지는 일감에 등을 돌리는 일이 없다.

"무용이든 국악이든 예산이 없어서 무대를 못올린다고 해서야 되겠어요. 공연 끝나면 나몰라라 하는 사람들때문에 수억을 날리기도 하고 남는 것도 없지만 절약과 소명의식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 좋은 무대는 관객과의 약속

무대가 좋아서 20여년 가까이 무대미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그는 단 한번도 배우들이나 극단을 위해 일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좀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은 사명에서 이 일을 한다는 것.

"배우들은 공연 끝나면 박수도 받지만 무대 뒤에 있는 우리들은 철거하느라고 다시 밤을 세워야 합니다. 때로는 다치기도 하구요. 외로운 길이죠."

지금이야 대학과 아카데미를 통해 배출된 신진세력들이 많아졌지만 그가 이 일을 시작할 90년대 중반만해도 무대미술가는 배고프고 또 흔치 않은 직업이었다고 한다. 상상공장의 이름은 중부무대미술연구소라고 지었다. 무대를 연구하는 그로서는 연구소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다. 돈 많이 벌어 공장터를 크게 꾸려 재활용 창고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세워놓았다.

오는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청주예술의전당 1전시실에서는 민병구의 무대미술전도 열린다. 그동안 만들어온 무대의 미니어처와 자료사진, 포스터, 팜플렛, 디자인 등 기록으로 모아두었던 것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한번의 무대를 위해 쓰였던 무대들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는 이유도 소모적인 예산이 적지 않기 때문이란다.

청년극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최영갑씨는 민병구씨야 말로 충북 무대미술을 업그레이드 시킨 주인공이라고 추켜세웠다. 무대미술이라는 전문 영역이 생기고 더이상 배우들은 망치질과 톱질,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도 되는 프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는 말한다. '무대미술은 무대 속의 미술을 보는 눈이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현장에 있다'

길을 걷다가도 작품을 구상하는 그에겐 살아 있는 모든 자연환경과 생활모습이 무대의 아이디어가 된다.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담고 일제시대 건물들을 담으러 다니고 자료를 찾기 위해 고서점을 찾는 이유도 삶을 무대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발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무대미술도 자료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무대미술가 민병구 그의 지론은 무엇일까?

"무대는 절대 게으르면 안됩니다. 게으른 순간 관객과의 약속은 지킬 수가 없어요. 책임감있게 약속한 시간을 제때 마무리하는 것…. 그런 기본원칙을 지켜가다보니 어느날 부터인가는 망치소리마저 아름답게 들리더군요"

그는 이번에 준비하는 무대미술전이 민병구 개인을 넘어 충북의 공연문화 역사를 쓰는 기록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보면서 상상력을 키우고 편안하고 안정된 무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무대미술가 민병구. 그에겐 앞으로 전기장치를 이용한 무대 미술을 선보이는 것이 새로운 도전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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