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피었다 지고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유채꽃이 피었다 지고
함박꽃이 피었습니다.

함박꽃이 피었다 지면
제비붓꽃 피어날까요?

하늘과 땅에
청노새빛 햇살 퍼지고

바다 건너 西天에서
아기 부처님 목소리 들려옵니다.

- 민 영 시집 '방울새에게' 중(실천문학사, 2007년)

* 진달래꽃 피었다 졌습니다. 유채꽃도 피었다 졌습니다. 함박꽃도 피었다 지고 붓꽃과 찔레꽃이 곱게 피어 있습니다. 그 꽃도 질 것입니다. 꽃 한 송이마다 어둡고 고통스럽던 시간을 이기고 싹을 내밀어 봉오리를 맺은 뒤 아름답게 피어 있다가 시들어 마침내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봄날에 피었던 모든 꽃이 태어나서 꽃피우고 화려하다가 시들어 돌아갔습니다. 꽃들도 생로병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신생, 성장, 쇠락, 소멸의 길을 걸어갑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생사윤회의 길을 갑니다. 사람도 예외이지 않습니다. 아프게 태어나고 기쁨과 고통 속에 살다가 늙고 병들어 한줌의 재로 돌아갑니다. 오온이 개공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거기서 색즉시공을 만났고 그리고 공즉시색임을 깨달으셨습니다. 색이 공이고 난 다음에 공이 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색과 공, 공과 색이 곧 하나임을 아셨습니다.

고해의 바다를 떠돌다 한줌의 재로 돌아가는 우리 생은 공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의미 있는 존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인 것입니다. 공 속에 존재의 오묘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착하지 말고 탐욕스럽지 말고 쉽게 분노하거나 어리석게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는 꽃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지는 것도 삶의 이치입니다. 지는 것에 매달려 상처받지 말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지는 것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는 꽃을 지는 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지는 꽃에서 아픔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어린 잎의 새로운 시작이 예비 되어 있고, 열매의 미래가 감추어져 있으며, 생의 진리가 스며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붙잡지 말고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에 / 청노새빛 햇살 퍼지"는 초파일 아침. "바다 건너 西天", 서방정토에서 다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아기 부처님 목소리" 그대에게도 들리길 바랍니다." 육도윤회를 넘어 영원히 살아 계시는 아기부처님 목소리를.

▶민영 약력

* 민영시인은 1934년 철원에서 태어나 195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단장', '용인 지나는 길에', '냉이를 캐며', '엉겅퀴꽃' 등이 있으며 만해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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