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행히 튼튼한 심장이 있어 가능했던, 모든 가족들과 친지들을 뒤로 넘어가게 했던 아버지의 놀라운 '반전'은 이 영화를 가족 해체를 다룬 여타의 영화들과 구분하게 만든다. 주선생은, 무심하게 혹은 눈물 흐리며 자식들이 떠나고 난 뒤 쓸쓸히 부채 부치며 허공을 응시하던 '동경 이야기' 속의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간다. 모두가 떠나버린 빈 집에 고립돼서 유령처럼 남기를 거부하고 새롭게 가족을 구성하면서 스스로 집을 떠나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가 일방의 승리와 패배로 귀결되지 않고 상생을 도모하는 이러한 결말은 전통의 상징이자 실체이기도 했던 음식이 있어 가능해진다. 전통음식이 정성스레 담긴 주선생의 도시락은 금영의 딸 산산과 그 친구들의 햄버거 점심을 물리친다. 그리하여 주선생은 젊은 세대에 대한 탄식과 경원을 멈추고 몸과 마음으로 그들을 끌어안는다. 변화의 물결에 주춤주춤 뒷걸음질하기보다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나가 맞으며 공생의 화해를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가천이 부지런히 손을 놀렸던 주선생네 가족의 마지막 만찬에는 아버지만이 참석한다.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가천의 짐이 곳곳에 쌓여있는, 팔려버린 옛 집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그러나 쓸쓸한 퇴락의 느낌으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아버지에게서 딸에게로 전수된 전통 음식 앞에서 딸과 손을 맞잡고 서로를 따뜻하게 부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잃었던 입맛이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러니 아버지라는 이름의 전통은 자식이라는 이름의 현대와 앞으로도 풍성한 일요 만찬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홀아비와 세 딸만의 식탁이 아닌, 더 많은 식구들이 와글와글 북적이는 식탁에서. 오래된 옛 집이 아닌, 희망으로 시작하는 새 집에서.
/ 박인영·영화 칼럼니스트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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