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 신체학대 줄고 쌍방 정서적 학대 증가

# 1결혼 10년차인 주부 K씨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 쓰고 있다. 평소 꼼꼼하고 세심한 남편이기에 가정경제를 맡기기에는 아내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합의에서 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양육비는 물론 미용실가는 비용마저 사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경제권을 넘겨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편은 그럴 의사가 없다고 했다. K씨에 따르면 남편은 '뼈 빠지게 번 돈을 헛되게 쓸 수 없다'며 생필품 구입 목록까지 요구하고 있다.

# 2결혼 30년 차인 중년의 L씨 부부는 부부모임을 갈때마다 부부싸움이 잦다. 남편은 다른 부부들이 있는 자리에서 '돌대가리'라느니 '저렇게 굴러다니는데 밤일이 하고 싶겠냐'며 짖궂은 농담을 일삼는다. 허물없이 지내는 부부계인지라 그러려니 참아왔지만 자신을 폄하하는 남편에게 L씨는 순간 순간 돌이라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생기곤 한다고 토로했다.

흔히 가정폭력은 여성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흉기를 가하는 형태 혹은 신체적 강압을 동반한 동의없는 성적 학대쯤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여성계에 따르면 신체폭력과 성적 폭력은 물론 언어폭력과 심리·정서적 폭력, 경제적 폭력과 사회적 폭력도 가정폭력의 범주에 포함된다. 청주YWCA여성상담소가 밝힌 가정폭력의 범주는 이렇다.

치고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끄는 등 신체적 폭력은 가재도구와 가구를 부수고 수면 및 영양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저해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심각한 신체적 장애를 불러오기도 한다.

또 신체 폭력 후 강제로 요구되는 성적 관계도 폭력으로 분류된다. 최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부부강간 문제도 동의없이 이뤄지는 성적 학대는 폭력이라는 판례에 근거하고 있다. 강제적 성관계는 여성에게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이로 인한 무기력 상태를 불러온다.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부인에게는 무제한적 성적 접근이 허용된다고 믿고 있지만 가정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내 강간도 성적 폭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경멸적인 말과 모욕, 계속된 비난으로 여성에게 열등감을 심어주는 것도 언어 폭력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협박이 가장 일반적 형태이며 아내가 남편을 떠난다고 할때 아이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협박은 가정폭력 희생자 상담사례에서 보편적인 유형 가운데 하나로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도 아내의 외부활동과 대인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 및 아내의 몸무게와 생김새, 성생활, 지능에 대한 언어적 학대는 사회적 폭력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폭력의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나 하나 참으면 되지' 하는 무기력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것도 심리적·정서적 폭력에 해당된다.

또한 남성이 경제적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모두 쥐고 아내의 경제활동을 차단하거나 아내의 월급을 모두 넘겨받아 생활비를 사정해야 주는 경우 또한 경제적 폭력이라는 것이 상담소측의 설명이다.

특히 이같은 폭력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는다'거나 '맞고 사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 '내 마누라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등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청주YWCA여성종합상담소 박정민 상담원은 "가정폭력방지특례법에서 정의하는 가정폭력은 가족구성원 사이에서 신체적·정서적·성적, 재산상의 손상을 주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사회적 정의는 상대방을 지배하고 통제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며 "신체적 폭력 정도가 강할수록 다양한 폭력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고 최근들어서 젊은 부부들 사이에 신체폭력은 줄고 상대적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 무시하는 정서적 폭력은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상담소에서는 가정폭력은 빈부와 학력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사회 계층에서나 발생하고 있으며 의처증과 의부증이 폭력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때릴 구실을 잡기 위해 상대방의 품행을 들먹이는 경우가 많은 만큼 잘못된 통념을 깨는 것은 물론 가정폭력을 개인 혹은 가정 문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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