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을 따라 물결로 가면 다다를 수 있을까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란 바다의 갈비뼈 하나
섬은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를 모르고
바다는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을 모른다

물결이 물결을 일으켜 섬을 감추고
물결이 물결을 쓰러뜨려 섬을 드러내는
온갖 쓰러짐과 일어섬의 바다에서
결코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지 않는 수평선
그 너머 물결을 따라 물결로 가면 다다를 수 있을까
오랜 설레임에 나부끼던 사람들의 偏愛가 눈떠
마침내 물결의 사이 쓰러지고 일어서던 사랑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란 바다의 갈비뼈 하나
섬은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를 모르고
바다는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을 끝끝내 모른다

- 강연호 시집 '비단길' 중에서(1994)

* 우리는 어쩌면 하나씩의 물결인지도 모릅니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 위에서 일어서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며 끊임없이 출렁이는 작은 물결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곁에는 결코 쓰러지지도 않고 일어서지도 않는 수평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수평선 전체를 일컬어 바다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평선 그 너머 바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물결을 따라 물결이 되어 가지만 우리가 바다에 다다를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하나의 섬인지도 모릅니다.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 육지와도 떨어져 있고 다른 섬과도 떨어져 홀로 있는 섬. 바다 때문에 섬이 되어 버린 섬. 그러면서도 우리는 바다를 잘 모릅니다.

"섬은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를 모르고 / 바다는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을 모"릅니다. 바다가 있어서 섬이 비로소 섬일 수 있고, 섬이 있어서 바다라 부르는데 바다는 섬을 모르고 섬은 바다를 모르는 채 살아갑니다.

내가 그 속에 있어서 그도 있고 나도 존재하는 것인데 나는 그를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물결로 출렁이고, 물결로 밀려왔다가 밀려갈 뿐 물의 근원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저 섬으로 있습니다. 우리가 바다를 알아야 바다도 우리를 알게 됩니다.

이아무개목사는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물결이 아니라 물결의 근원이다. 물결의 차원이 아니라 물의 차원, 궁극적 차원(ultimate dimension)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근원을 향해 가는 물결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섬은 바다를 알고 바다는 섬을 알며 우리도 그처럼 서로를 아는 물결로 존재하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이 바다의 날입니다.

▶강연호 약력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199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비단길',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등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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