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흥업백화점 진두지휘 김명기 사장

김명기 흥업백화점 사장은 인터뷰전 두 가지를 밝혔다.
자신은 언론에 얼굴을 드러낼 정도로 잘 난 인물이 절대 아니라는 것과, 아직까지 법정관리 개념이 일반화되지않아 고객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 제목만은 절대 빼 달라는 것이다. 김 사장은 겸손하면서도 부담이 없었다.

▲ 김명기 사장(맨앞줄 가운데)은 회사 정상화가 될때까지 전 직원들과 동고동락하겠다며 화이팅을 외쳤다.
1991년 3월 청주시내 성안길에 유일한 향토 백화점인 흥업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 토종 유통업체였던 후생사를 전신으로 백화점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건물 2/3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금융부담이 지나치다보니 초기부터 자금압박을 받는 등 출발이 순조롭지못했다. 게다가 유통에 대한 전문마인드 부족으로 매출이 줄면서 4년 후인 1995년 8월 부도를 맞았다.

김 사장은 "대학 졸업후 지인의 소개로 첫 직장 인연을 맺어 처음 맡은 일이 공단(지금의 청주산업단지)에서 회원카드를 발급하는 일이었어요. 일도 재미있고, 첫 월급 18만원을 받은 게 너무 신기했죠"라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그런 직장이 없어진다는 사실에 아무 생각이 없더군요"라고 회상했다.

부도 당시 그는 관리과장이었다.

마냥 체념할 수는 없어 400여명 채권자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설득, 유통부문에선 전국 처음으로 법정관리를 이끌어냈다.

그해 9월1일부터 다시 영업을 재개, 그는 변제계획을 수립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으로 지금은 전체 채무의 60% 정도를 변제한 상태다. 앞으로 5년내 법정관리 졸업이 목표다.

2001년과 2002년 유통업체로선 IMF보다 더 어려운 카드대란이 일어났다. 무차별 발급된 카드 사용이 제한되면서 매출이 줄고, 주요 브랜드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갔다. 때마침 대형마트들이 속속 개점하면서 타격은 더욱 컸다. 여윳돈이 있는게 아니고 법정관리다보니 차입경영을 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었다.

절반 이상이 떠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임금과 보너스를 동결하고,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기위해 쥐어짜고, 또 짰다. 이때 남아있는 소수의 끈끈한 직원들이 지금의 그들이다. 2005년 8월 그는 채권자 동의와 직원들의 추대로 관리인에 선임됐다.

2006년 행운이 찾아왔다. 경쟁업체인 청주백화점이 지금이 롯데 영플라자에게 매각되면서 문을 닫았다. 손님들이 몰렸다. 그는 MD 구성을 새롭게 했다.

전략적으로 이지캐주얼 군을 과감히 축소하고 중장년 군을 강화했다. 메인 영업층인 2, 3층을 미시 캐주얼로 통합하고, 4층은 마담 및 실버존으로, 5층은 남성 정장으로 특화시켰다. 6층을 유아동 전문 매장으로 탈바꿈했다. 토종 백화점이다 보니 어덜트 층의 지역사랑에 초점을 맞춰 영업 전략을 구사한 것이 딱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대비 200% 성장했다. 올해 패션 부문 매출은 전년대비 30% 신장한 430억원이 목표다.

그는 "젊은 층은 유행변화가 빠르나 중장년층은 한번 오시면 친구도 데려오는 의리있는 고객"이라며 "파는 것만이 아닌 오셔서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는 사랑방이 바로 흥업백화점"이라는 설명이다.

매월 두차례 청주시내 성안길을 청소봉사하고, 지난 스승의 날에는 청주시내 학교 선생님들에게 떡을 전달하는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감동 서비스도 펼치고있다.

김 사장은 "운도 노력없이는 받을 수 없다"며 "지금은 매출 상승에 힘입어 유명 브랜드가 입점하고 있으나 앞으로의 변화에도 꾸준히 대비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18년여 흥업맨이 된 것으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김 사장은 회사 정상화가 될때까지 전 직원들과 동고동락하겠다며 화이팅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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