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김진혜 /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충북지회

어렸을 적에는 누구나 한번쯤 - 물론 누구나 다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 용돈이 궁할 때 부모님 지갑을 몰래 열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이 늘 부족하여 어떻게 하면 넉넉한 용돈을 가져볼까가 고민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 지갑은 언제나 지폐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동전지갑을 몸에 지니고 계셨는데 지폐 한 장이 접혀 있거나 동전만 들어있어 짤랑짤랑 소리를 냈던 기억이 난다. 매달 한번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받는 어머니는 지갑보다는 제목을 적은 여러 봉투에 생활비를 나누어 넣어 놓으셨는데 가계부를 적진 않으셨지만 낡고 흰 봉투가 그 역할을 충실히 담당했던 것 같다.

아마도 몇 번인가 아버지 지갑과 어머니 봉투를 열어보곤 나름대로 표시 안나게 돈을 슬쩍 하기도 했는데, 느는 게 기술이라고 때론 참고서, 준비물을 핑계 삼아 가격을 부풀려 더 많은 용돈을 타쓰기도 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모를 것이라는 깜찍한 생각에 양심의 가책도 없었는데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민망하던지, 나이 들고 결혼하여 아이들을 키우면서 왠지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모님께 죄송한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부모님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이 자랑할 일이 아닌데 그러고도 참 당당함을 가지려고 했던 것은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아버지께 '저, 옛날에 아버지 돈 훔친 적 있었어요.' 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아니다. 무슨 소리냐. 그 돈은 내가 모르고 주지 않으니 네가 가져간 것아니냐.' 하셨다. 친구에게 이 말을 하니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하기에 다시금 부모님이란 항상 당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우친다.

나이를 먹었어도 요즘은 내가 너무 어리석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모르겠다. 나는 왜 우리 부모님은 항상 건강하신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곁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는지…부모님이 나이 드시는 것을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늘 건강하고 든든한 버팀목으로 계셔주시는 아버지가 요즘 편찮으시다. 어머니도 덩달아 몸이 많이 상하셨다. 약해진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은 더욱 나를 아프게 한다. 진즉에 맛있는 것 사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좋아하시는 것들을 많이 해드릴 것을 왜 생각뿐이었는지...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기에도 부족한 자식인데, 이제 좀 편하게 해드리려고 하니 병이 나셨다.

그럼에도 몸 아프신 것은 당신이 관리를 못해 그런거라며 오히려 자손들에게 짐이 될까봐 걱정먼저 하신다. 아버지. 다른 걱정은 마시고 어서 빨리 회복하시어 그전처럼 든든하게 계셔 주세요. 아버지는 우리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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