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인민군이 휩쓸고 간 연풍리에 국군이 다시 오자 부역업자 색출이 한창이다. 성민(이준)의 아버지 최씨(안성기)는 미군 장교와 사귀는 딸 영숙(명지연) 덕분에 미군 부대에 일자리를 얻었다. 행랑채 창희(김정우)네는 아버지가 인민군에 끌려가 안성댁(배유정)의 고생이 심하다. 하지만 성민은 창희와 도시락도 나누어먹고 밤이면 아이들과 집게벌레 잡기 놀이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미군부대 다니던 아버지가 라디오며 세간들을 가져오고 염색업도 맡아 성민네는 점점 나아지는데, 창희네는 더 쪼들린다.

언제나처럼 양코백이들 드나드는 물레방앗간에 놀러간 성민과 창희는 미군병사 앞에서 옷을 벗는 안성댁을 본다. 그 자리에 최씨가 나타나자 성민은 다시는 아버지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방앗간을 불태운 창희를 미군이 찾으러 다닌 뒤 우물에서 아이 시체를 건져내자 아이들은 빈상여로 장례식을 치러준다. 휴전협정 조인에 즈음해 창희 아버지가 골병 든 몸으로 돌아오고, 군부대서 물건을 빼돌리다 발각 난 아버지는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쓴다. 다음 날 새벽, 스미스중위의 아이를 밴 누나와 세간 살림을 달구지에 실은 성민네가 먼 길을 떠난다.

"삶이 치욕이더라는 당신의 말씀…""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고향의 봄' 피아노 연주가 깔리는 화면은 깜깜하다. "빨갱이 새끼! 어디 숨었어?" 험악한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는가 싶더니 화면이 동그랗게 열리며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인민군 부역자를 찾아 나선 마을 주민들에게 드디어 우물에 숨은 남자가 발각된 것이다.
이광모 감독의 데뷔작 '아름다운 시절'(1998)의 도입부는 의미심장하다. 햇빛이 어둠을 가르고 쏟아지는 것처럼 망각의 세월을 뚫고 한국전쟁이라는 상처의 시간이 우리 앞에 돌연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밝은 햇살과 마주치는 이 느닷없는 순간은 세상의 모든 아들(딸)들이 언젠가 한 번은 마주쳐야 하는, 그러나 정녕 피하고 싶은 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어리석고, 비겁했으며, 추악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 징그럽게 계속되던 그 때 연풍리. 어른들의 세상은 엉망진창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막걸리 한 잔에도 너그럽던 이웃들이 몽둥이, 도끼를 들었다. 성언이의 '빨갱이' 아빠가 김선생님의 집안 식구들을 죽이더니, 이제는 몰매 맞아 축 늘어진 시체가 됐다. 성언이도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

그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다. 풍비박산 난 상언네가 겨우 산자락에 움막 짓고 병든 상언엄마 몸을 뉘었거나 말거나, 성민 엄마 구박에 창희 엄마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거나 말거나. 천막학교에서 '미국의 발달상'을 목청 높여 읽어야 하는 세상, 미군부대서 빨래 감이라도 얻어 와야 입에 풀칠을 하는 때. 미군 장교의 아이를 가진 딸아이 앞에서 얻어온 라디오에 넋 놓고, 빼돌린 고기 육질에 감탄하는 아버지가 있어 그래도 성민은 다행이다.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장면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약값 때문에 딸을 양코백이 드나드는 물레방앗간으로 밀어 넣는 아비, 보리쌀이나 팔아먹게 해주겠다며 더 이상은 팔 게 없던 행랑채 아낙을 지프차 멈춰 선 그 곳으로 이끄는 아비들을 본다. 그래놓고도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인 그녀들에게 "괜찮냐?"고 묻는 어리석은 그들을.

그 순간, 열두 살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닌 시간으로 들어선다. 도시락을 나누어먹어도 견딜 만하고, 말뚝 박기도 즐겁던 아이들은 희고 검은 손들이 누나와 엄마의 옷고름을 풀었던 그 곳에서 라이터와 초콜릿, 포르노 잡지를 찾았었다. 근사한 망원경을 줍는 횡재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시절은 없다. 자랑스럽던 아버지의 자전거에 더 이상 성민은 올라타지 않고, 쓰다듬는 손길을 피한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만장을 펄럭이며 빈 상여를 멘다. 어른들이 거두어주기를 외면한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러 빈 무덤을 만들고 밤이며 대추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

그러니 시뻘건 페인트를 뒤집어써서 꼭 아이들 잡아먹는 야차처럼 보이던 아버지를 처음 보았을 때 성민은 내빼고야 만다. 하지만 물기 짠 걸레로 그 몸을 닦아줄 때 고개를 푹 숙이던 아버지는, 그래도 미군 물건 빼돌려 장만한 집 안방서 회초리 들던 때보다 한결 견딜 만하다. 그날 밤 꿈에 창희가 찾아온 것도, 켜지지 않던 라이터가 환하게 불 밝힌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 같다.

기억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수차례 색 보정을 했다는 '아름다운 시절'의 화면은 마치 녹이 낀 것처럼, 혹은 나무 밑동이나 너럭바위에 이끼 낀 것처럼 시간의 흔적이 역력하다. 20세기 끝자락에서 연풍리를 되돌아보는 반세기의 거리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 시간의 거리 앞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한다. 부끄러웠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그 시절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지독한 역설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도 같다며. 박인영/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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