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추수감사절 즈음, 미국 코네티컷주 뉴 캐넌. 결혼 17년차인 벤(케빈 클라인)은 엘레나(조안 알렌)와 서걱거리는 와중에도 이웃사촌 제이니(시고니 위버)와 밀회를 즐긴다. 파국을 눈앞에 둔 부모를 지켜보는 14살 딸 웬디(크리스티나 리치)는 제이니와 짐(제이미 셰리던)의 두 아들 마이키(일라이저 우드), 샌디(애덤 한 바이어드)와 섹스놀이를 벌인다. 아이스 스톰이 예고된 추수감사절 날, 뉴욕의 사립학교에서 집에 온 아들 폴(토비 맥과이어)은 여자 친구 리베트 집으로 놀러간다. 벤의 배신을 확인한 엘레나가 '키 파티'의 '부부간 파트너 바꾸기'에 참가할 때. 웬디는 샌디와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 세상이 가장 깨끗한 순간을 즐기겠다며 밖으로 나간 마이키가 감전사하는 순간, 뉴욕서 돌아오던 폴이 탄 기차가 멈춰 선다. 술에서 깨어나 집으로 돌아오던 벤이 마이키의 시체를 안고 제이니의 집으로 온다. 오열하는 짐을 보던 벤과 엘레나, 웬디는 새벽에야 도착한 폴을 마중하러 역에 나간다. 자동차에 올라 탄 가족들을 말없이 돌아보던 벤이 얼굴을 양 손으로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한다.

"우리가 진정 가족이었을까"


"맛있는 음식도 먹고, 어리광도 피우고 그랬으면 좋겠구나."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오랜만의 가족 재회에 들뜬 아버지가 말한다. 혹은 이렇게도 말한다. "네가 궁금한 모든 것, 사는 이야기, 이젠 그런 걸 이해할 나이가 됐다. 걱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이야기해라." 그는 그러니까,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자상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자식들과 소통하며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하지만, 모든 것이 거짓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대만의 가족을 소재로 '아버지가 가장 잘 안다(Father Knows Best)' 3부작을 만들었던 이안감독이 1970년대 미국 중산층 핵가족의 풍경을 그려낸 문제작 '아이스 스톰'(1997)은 역설적이게도 '아버지는 모른다' 혹은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가 주제어이다. 혁명과 진보의 60년대를 청년세대로 돌파했던 70년대의 아버지/어머니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지를. 그 '알지 못함'의 공백을 너무나 일찌감치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들이 채운다.

그들은 할 말이 없다. 텔레비전에서 닉슨을 보며 열네 살 딸아이가 "저런 놈은 총 맞아야해, 거짓말쟁이!""나라 전체가 무정부상태야, 끝장난 거라고" 분노를 토할 때, 그저 얼음을 깨서 보드카 잔에 넣을 뿐이다. 자신들이 부정했던 '아버지'의 자리에 정작 서게 되었을 때, 베트남전 패배와 오일 쇼크, 워터게이트의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대신 그들이 할 수 있는-어쩌면 유일한-일을 한다. 벤은 절친한 이웃사촌의 안방 물침대에서 밀회를 즐기고, 젊은 시절의 자유로움을 그리워하던 엘레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게에 가서 좀도둑질을 한다. 친구들과 만나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 토론에 열 올리고, '묻지 마 쾌락'을 기대하며 자동차열쇠를 유리그릇에 던진다. 그러면서도 속이 훤히 보이는 어른흉내를 포기하지 않는다-"어른이 되면 분별력이 생기지. 사물을 보는 눈이 정확해져."

이렇듯 출구를 찾지 못하는 방향상실과 혼란의 교착상태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을 닮아간다. "우리 집도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혼법정으로?" 냉정한 호기심을 키워가는 그들은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 대신 속죄-"인디언이 학대받고 베트남은 굶주려도 우린 배터지게 잘 먹고 있으니, 물질적 풍요를 준 하나님께 감사한다"-하거나, 채 여물지 않은 서로의 몸과, 엄마의 신경안정제, 맥주와 담배, 그리고 마리화나를 탐한다. 혹은 폭탄 놀이나 채찍질, 교수형 놀이 속에서 헤매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과 아이들, 부모와 자식들의 세계가 완성하는 건 거대한 데칼코마니의 형상이다. 웬디와 마이키가 떨리는 입맞춤을 나눌 때 벤과 제이니의 물침대가 출렁이고, 제이니를 기다리던 팬티 차림의 벤은 섹스 흉내를 내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웬디와 엘레나가 가게 주인의 눈을 피해 물건을 훔칠 때 벤과 제이니는 세상의 눈을 피해 서로를 파고든다. 혹은 부모들의 '키 파티'와 아이들의 '약 파티'가 나란히 놓이는 것이다.

부모들의 낭패와 열패감이 자식들에게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이 총체적인 패배담은 따라서 비극으로 완결된다. 태엽을 감아주면 '구조 요청'을 외치던 병정 인형은 빈 집에 있던 웬디와 샌디에 의해 교수형을 당한다. 벤과 엘레나, 짐과 제이니의 가족들 또한 '구조'되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그들 모두의 죄를 안고 가듯, '분자들의 활동이 멈추는 가장 깨끗한 순간'에 마이키가 세상을 뜬다.

위기의 시대, '카오스'의 가족을 더없이 스산하게 그려내는 '아이스 스톰'은 따스한 아침 햇살 속에 다시 모인 벤과 엘레나 가족의 모습으로 끝난다. 악몽과도 같았던 긴 밤을 버텨낸 이들은 마치 지옥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 생환의 끝에서, 그래도 잘되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기를 멈추지 않던 아버지 벤이, 투항하듯 울음을 터뜨린다. 마이키의 대속(代贖)과 벤의 흐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 박인영·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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