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博 김영관 학예관, 논문서 주장
이같은 주장이 맞다면 청주를 둘러 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쟁탈사는 다시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학예연구관은 "역사적 기록으로 보면 고구려가 서기 475년 백제수도 한성을 함락시킨 것은 맞다"며 "그러나 고구려는 한성을 함락시킨 후 한강유역을 지속적으로 지배하지 않고 곧바로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이후 고구려는 서기 529년 한성을 재차 침공, 그 여세를 몰아 백제군을 금강상류(청주지역)까지 뒤쫓아 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고구려는 나제 연합군의 공격으로 한성을 다시 빼앗기는 시기인 서기 551년까지 청주지역을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고구려가 청주지역을 지배한 시기는 기존 '75년'보다 학설보다 훨씬 짧은 '28'년(529~551년) 밖에 안되고 있다.
고구려 남진 최전방 본거지
# 남성골산성은
학계에서는 부강 남성골산성을 고구려의 남진 최전방 본거지로 보고 있다. 학자들은 그 근거로 ▶석성(石城)이 아닌 목책성(木柵城)이고 ▶성 곳곳에 불탄 흔적이 남아 있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목책성은 성벽을 나무와 흙을 이용해 쌓은 성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고구려는 석성을 축조했다. 따라서 남성골산성이 목책으로 쌓아진 것은 당시 고구려가 오래 주둔하지 않았고, 또 정주(定住)가 아닌 최전방 임시 주둔지로 여겼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강 남성골산성은 김영관 학예연구관의 최근 주장을 상당부분 뒷받침하고 있다.
조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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