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유감>

김영한 / 수필가

圓覺度場何處(원각도량하처)
現今生死卽是(현금생사즉시)

'행복(극락정토, 깨달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행복은 당신이 딛고 서 있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바로 이 자리이니라.'

인간이 서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이 자리, 이 순간을 놓치고 애써 뭘 잡으려고 한다면 모두가 환(幻)이며 몽(夢)이다. 우리가 애써 살펴봐야할 시공(時空)은 지금 바로, 이 자리가 아닐까?

물질만능시대에서 순수한 문화와 예술은 얼마만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을까.

2년 전 낙엽 지는 가을 어느 날, 상당극회에서 공연하고 있는 송기원 작 박현진 연출 '늙은 창녀의 노래'를 관람했다.

작가 송기원씨는 인도까지가서 도를 닦고와 지금은 공주 계룡산 갑사 대자암에서 좀 더 들어가 토굴에서 기거하고 있다.

늙은 창녀역을 맡은 임은희씨는 1976년 연극계에 입문해 40여 편에 출연한 노련한 연기파로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배우다.

시골에 살던 순진한 십대의 나이로 가난이 싫어 도시에 나가 돈을 벌기 위해 기차를 탔다가 옆에 앉은 점잖은 아저씨가 취직을 시켜준다는 꾐에 조금치의 의심도 없이 고맙게 느끼며 따라간 아저씨에게 강제로 처녀성을 빼앗기고 남은 것은 허탈뿐.

누구에게 하소연할 길 없는 여자의 운명이기에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먹고 살기 위해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엡.

여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못할 짓이 몸을 판다는 것인데 어쩔 수 없는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잠깐 하다 그만둔다는 것이 20년. 지긋지긋한 생활을 청산하려고 몇 번이나 별렀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처음 본 손님에게 과거를 낱낱이 고백한다.

그녀는 마음이 아닌 몸으로 남자들을 만났음을 고백한다. 자기 과거를 고백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 학대이며 파멸이다.

때론 울면서 통곡하며 또 해학적 웃음으로 고백하는 모습에서 창녀라는 느낌보다 끈적끈적한 인간미와 함께 이상하리만치 순수성을 느끼는 것은 병든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병든 상처가 더 크다는 진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이 늙은 창녀의 고백 속에서 인간 본래의 순수성을 느끼게 된다.

"정을 주는 일이 인자는 무섭지 않다"며 이제는 "사는 일이 추워서 떠는 손님을 만나면 썩은 몸뚱아리 저 깊숙이 살아오는 온기를 주고 싶다"는 간절한 목소리가 진실임을 알게 된다.

이 창녀에게 자신 있게 돌을 던질자가 있을까?

성경에선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듯이 순수한 마음으로 인간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실성이 요구되는 사회다. 모든 가식을 훌훌 던져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된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늙은 창녀의 말처럼 발가벗은 몸과 마음으로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해와 관용으로 인간미 넘치는 이 시간 이 자리가 바로 천국이며 오늘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참 삶이 행복이라는 운명의 굴레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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