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용 / 청주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청주법원은 지난 달 산남동 신청사에 설치할 조형물을 공모하였다. 많은 작품이 출품되어 심사과정에 어려움을 예상하였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전문가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선정에 의견일치를 보였고, 놀랍게도 법원 내 선호도 조사에서도 당선작을 예측할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났다. 법원이 지향하는 가치와 상징성을 표현한 예술품을 공감하는데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안목이 따로 일 수 없었던 것이다.

재판절차에서 흥분하여 법정분위기를 위태롭게 몰아가는 열혈 당사자들이 간혹 눈에 띈다. 이들을 성급하게 제지하면 오히려 분위기가 악화되기 십상이다. 이럴 때 재판장은 그에게 방청석을 돌아보도록 하면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이지요. 계속 그렇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 된다. 더 이상 설득의 언사가 불필요한 순간이다. 이미 공감의 울타리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빚 때문에 배 밭이 경매로 넘어간 젊은 농부가 토지인도소송의 피고가 된 사건이 있었다. 농부는 현장검증에 비협조적이었고 심지어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다. 그런 태도의 농부를 그냥 놔둔 채 오히려 배 밭을 낙찰 받은 기회를 이용하여 배나무까지 독차지하려는 원고의 의도를 질타했다. 이에 의아해진 농부가 재판부의 조정안에 선뜻 동의함으로써 사건이 잘 마무리되었다. 먼저 반감을 없애야만 비로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사법부는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재판의 신뢰를 위하여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말로 하는 재판, 법정에서 충실하게 심리가 이루어지는 재판, 당사자도 참여하는 재판….

청주법원도 이에 부응하여 사법서비스의 만족도 제고를 위해 열정을 보여 왔다. 그밖에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열어 아름다운 소리로 시민들과 공감하고, 학생들에 대한 법 교육을 통하여 법의식을 함양하고 준법의 필요성에 공감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을 제대로 공감시키려면 공직자 스스로 부지런히 배우고 절실히 느껴야 한다. 불공평하거나 부조리한 업무처리에 대하여 국민들은 언제든지 매서운 비평가의 눈으로 공감부족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거장들은 다양한 경험과 고된 노력을 통하여 인류가 공감하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냈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곡 해석과 연주자들의 기교가 청중에게 얼마나 감응하는지 여부에 따라 실력을 평가받는다.

재판도 예술과 다르지 않다. 법관은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 투철한 소명의식과 세계시민으로서의 감각을 겸비해야 한다. 우리에게 설득력 있는 주장이 외국에서 도외시될 수 있고, 오늘날 지지받는 이념, 정책이 미래에는 옛 신화로 치부될 가능성을 인식하여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 따라 공감의 의미를 달리 적용할 수 있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법원은 공정하고 친절하게 절차를 진행하고, 논리의 완결성 못지않게 당사자가 공감하느냐에 무게를 두고 판결해야 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다수가 수긍하는 설득력 있는 판결에 대해서는 비록 자신이 패소하였더라도 "그 판결 공감이 간다"고 박수칠 수 있어야 한다. 명작을 알아보는 수준 높은 관객 속에서 훌륭한 예술이 찬연히 꽃피듯이 명판결에 기꺼이 찬사를 보내는 올곧은 국민 속에서 법치문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기에.

내년이면 청주법원은 새 집을 지어 이사한다. 신청사 앞에는 '진실의 눈'이라는 상징조형물이 시민을 맞이할 것이다. 그 곳에 왜곡과 억지가 발붙일 구석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진실이 제대로 가려지고 모두가 공감하는 '명품재판'을 감상할 수 있는 법원을 한마음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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