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후의 혼란함이 여전한 서울. 해방촌 판잣집에 사는 실향민 철호(김진규)는 계리사 사무실에서 일한다. 전쟁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채 "가자"는 말만 되풀이하는 병석의 노모와, 만삭의 아내(문정숙), 부상으로 제대한 동생 영호(최무룡), 역시 상이군인인 애인 경식(윤일봉) 때문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여동생 명숙(서애자), 학교를 작파하고 신문팔이에 나선 막내 민호 등 가족들이 그의 박봉에 목을 매고 있다. 오래 전부터 괴롭히던 치통을 앓던 그는, 양공주가 된 명숙을 경찰서에서 빼내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한편 애틋함을 나누었던 전 간호장교 설희(김혜정)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영호는 은행 강도를 하다 경찰에 쫓긴다. 수감된 영호, 출산으로 목숨을 잃은 아내 등 자신을 둘러싼 절망적 상황에 놓인 철호는 치과에 들러 앓던 이를 빼고는 과도한 출혈로 점차 의식을 잃는다. 택시에 탄 철호는 행선지를 중언부언하다가 그냥 "가자!"고 외친다.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가야하나"

이들 가족은 말을 나누지 않는다, 아니 나누지 못한다. 비행기 굉음이 들릴 때마다 벌떡 일어나 "가자, 가자!"를 외치는 노모를 아들과 며느리, 딸이 맥없이 바라본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발걸음을 질질 끌며 남편이 귀가했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해 뱃속 아이가 힘겨운 아내는 입을 열지 않는다. 혹은 거리에서 미군에게 몸을 팔던 여동생, 권총을 들고 은행을 털었던 남동생과 경찰서에서 맞닥뜨렸을 때 오빠나 형의 이름으로 할 말이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전후의 암담한 현실을 명징하게 담아낸 이범선의 원작을 영화화한 유현목 감독의 1961년 작 '오발탄'에서 철호 가족은 해방촌 판잣집에 산다. 그런데 집이라 이름 붙이기 마땅찮은 이 산동네 꼭대기 공간에서 철호 부부와 딸 혜옥이 자는 방에만 문이 달려있다. 마당과 같은 실내의 가운데 공간을 중심으로 배치된 노모와 여동생의 공간, 영호의 2층 침대가 모두에게 개방돼있는 것이다.

'개인'으로 구획되기보다 '가족'으로 통합돼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공간 안에서 그러나 가족들은 낱낱이 흩어져있다. 그들에게 그나마 침묵과 외면이 있어 한 공간을 견뎌낼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막내 민호가 영호를 피해 자동차 뒤에 몸을 숨기거나, 쇠사슬로 나뉜 화면 앞뒤 공간을 묵묵히 걷는 철호와 명숙의 모습을 통해 확인된다. 혹시 대화가 오간다 해도 번번이 충돌과 불신으로 끝나게 마련이며, 어린 조카는 삼촌의 말에 콧방귀를 뀐다. 나이롱 치마와 백화점 구경의 약속을 믿느니 하늘의 별을 따오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이니 말이다.

'천근만근 짐짝'처럼 각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압박 속에서 차마 나눌 말을 찾지 못하는 인물들의 침묵 대신 영화에는 날카로운 파열음들이 그득하다. 종업원과의 실랑이 도중 술집 문의 유리창이 깨지고, 옆구리 상처를 상품화하자 나섰던 영화사 문 유리가 깨진다. 아이의 풍선, 은행의 전등, 경식의 술잔, 그리고 시 10편만 쓰고 죽겠다는 옆집 청년의 손에 떠밀려 설희의 몸도 깨어진다. 대기의 파장을 교란하는 파열음은 계속 돼, 다리 밑 목매 죽은 어미의 등에 매달린 아이의 울부짖음과 위험수당 인상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아우성으로 이어진다.

4.19가 허락해준 정치적 자유의 기운을 온전히 품고 있어 5.16 군사정권에 의해 상영중지 되기도 했던 '오발탄'에서 매번 인물들 앞을 가로막는 계단의 의미는 상징적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와 "가자, 가자!"의 절규가 뒤섞이는 판잣집으로 가는 길에는 사다리가 놓여있고, 목발 짚은 경식 앞에도 여지없이 계단은 나타난다. "이 넓은 땅덩이 위에 저 혼자만 서있는 것 같다"던 설희의 옥상 방까지 가려면 44개의 철제계단을 지나야하고, '한탕'을 꿈꾸며 찾아간 영화사 사무실에서 영호와 미리의 얼굴을 가두는 것도 계단이다. 그러니 "남들처럼 근사하게 살아보자"던 영호의 꿈도 어느 공장의 계단에서 꺾인다.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인지 어쩐지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어딘가로 '올라갈 것'을 요구받는 피곤한 현실을 버티느라 철호의 발걸음은 늘 허우적거린다. 영화의 도입부부터 끝까지 화면에 가득 찬 그의 두 발은. 노모의 절규를 들으며 집 앞에서 발길을 돌리거나,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 경찰서와 병원 계단을 내려올 때, 한없이 위태롭다.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 건, "왜 이렇게 오래 참았냐"는 타박을 들을 만큼 꾹 참는 것과 함께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을 터. 나른한 휴식과 죽음처럼 달콤한 숙면을 안겨줄 어떤 곳도 허락되지 않은 그로서는 시지프스의 천형처럼, 저주받은 분홍신을 신은 발레리나처럼 그저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지상에서 가고 싶은 곳을 알지 못한 채 가야할 곳만 많던 그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갈 수 없는 곳을 꿈꾸는 노모의 해방촌과, 싸늘한 시체가 된 아내와 어미를 잃은 불쌍한 아이가 있는 대학병원, 허망한 꿈의 대가로 차가운 수갑을 찬 동생이 있는 경찰서, 혹은 신문 꾸러미 끼고 달리고 있을 막내 동생이 있을 어느 밤거리….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한 곳에 모일 수 없는 가족들의 공간을 헤매던 택시가 한 밤 서울 도심을 뱅뱅 돈다. 그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 박인영·영화 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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