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다.
늦은 별이 혼자 풀밭에 자듯
그의 발은 외롭지만
가슴은 보석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는다.
저녁엔 아득히 말씀에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에
다시 서성이는 나무.
때로 무너지는 허공 앞에서
번뇌는 절망보다 깊지만
목소리는 숲 속에
천둥처럼 맑다.
찾으면 담 밑에 작은 꽃으로
곁에서 겸허하게 웃어주는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은
가장 단순한 사랑으로 깨어 있다.

- 이성선 시집 '절정의 노래'(창작과비평사, 1991) 중에서


*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 눈동자가 따뜻하다" 이 시 구절이 참 좋습니다. 그럴 겁니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보면 눈을 제일 먼저 보라고 합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영혼이 깨끗해서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 그의 곁에 앉아 따뜻한 눈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일 겁니다. 살면서 영혼에 때가 묻은 사람들 사이에서 깨끗한 영혼을 간직한 채 살고 있으므로 풀밭 위에 혼자 자는 늦은 별처럼 외로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깨끗한 영혼으로 인해 그의 가슴은 보석처럼 빛날 것입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가슴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을 것입니다.

저녁에는 진리의 말씀에 아득히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의 아침 햇살로 온몸을 채우는 나무처럼 그의 영혼은 빛날 것입니다. 그의 번뇌는 절망보다 더 깊고 그가 견뎌 내야 할 어려움은 산보다 더 클 겁니다. 영혼이 깨끗하여 세속의 길에서 수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크고 맑을 것입니다. 담 밑에 작은 꽃처럼 우리 곁에 있는 그. 언제나 겸허하게 웃어주는 그. 그런 사람이 보고 싶습니다.

눈동자가 따듯한 그는 계산하지 않습니다. 잔꾀를 부리지 않고 현란한 언어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사랑은 단순합니다. 진리는 복잡하거나 어지럽지 않듯 그의 사랑도 명료하고 단순합니다. 그는 사랑하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아는 사람입니다. 깨끗한 영혼으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늘 깨어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런 영혼을 지닌 사람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온기에 오래오래 젖어 있고 싶습니다.

▶ 이성선 약력

1941년 강원 고성출생.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시집으로 '시인의 병풍', '하늘 문을 두드리며', '몸은 지상에 묶여도', '산시' 등이 있으며 정지용문학상, 시와시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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