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사람이 그리울 때면
시골 버스를 탄다
시골버스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황토흙 얼굴의 농부들이
아픈 소는 다 나았느냐고
소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낯모르는 내 손에
고향 불빛 같은 감을
쥐어주기도 한다.
콩과 팥과 고구마를 담은 보따리를
제 자식처럼 품에 꼭 껴안고 가는
아주머니의 사투리가 귀에 정겹다.
창문 밖에는
꿈 많은 소년처럼 물구나무선
은행나무가 보이고,
지붕 위 호박덩이 같은 가을 해가 보인다.
어머니가 싸주는
따스한 도시락 같은 시골 버스.
사람이 못내 그리울 때면
문득 낯선 길가에 서서
버스를 탄다.
하늘과 바람과 낮달을 머리에 이고

- 이준관 시집 '부엌의 불빛'(시학, 2005) 중에서

* 살면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람사이의 정처럼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끼리 모여 살고 어울려 지내는 곳이 세상이고 보면 사람이 제일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도 사람이다. 도시 생활이라는 것이 같은 동네에 살아도 인사 없이 지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데면데면한 얼굴로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태반이다. 인사 없이 지내니 서로간의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시골에서는 이웃집 소가 아파도 서로 걱정을 하고, 낯모르는 사람들 손에 감 하나를 그냥 쥐어주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 사이의 정을 잊고 산다. 자기가 농사지은 콩이며 팥이며 고구마를 제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니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소중하게 생각한다. 화자는 그런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가을에 사람이 그리울 때면 / 시골버스를 탄다"고 한다. 시골버스에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골버스에서는 어머니가 싸주시던 도시락 같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을, 나도 문득 낯선 길가에 서서 시골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싶다. 낯모르는 사람의 손에 "고향 불빛 같은 감을 / 쥐어주기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 이준관 약력

1949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하였고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다. '황야', '가을 떡갈나무 숲', '열손가락에 달을 달고' 등의 시집을 냈고, 김달진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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