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의대 정효운 교수, 기존설 정면 반박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설치 주체는 당시 왜왕 정권이 아닌 금관가야라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됐다.

동의대학교 정효운(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얼마전 동북아 문화연구 제 13집(2007년)에 '중간자적 존재로서의 임나일본부'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에서 수십편의 논문이 발표될 정도로 임나일본부는 양국 고대사의 최대 갈등 요인이 돼 왔다. 학문적 논증 외에 이른바 양국의 내셔널리즘이 개입되면서 밀고 당기기를 거듭해 왔다.

▲ 종래 학설은 임나를 가야 전체로 봤으나, 정효운 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이를 임나=금관가야라고 주장했다. 그는 광개토대왕이 가야를 침공한 것도 신라 요청에 의한 금관가야 잔존 세력의 진압작전으로 봤다.
그러나 국내 상당수 관련 논문은 "6세기 무렵의 일본열도 왕권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임나일본부의 설치 주체를 왜왕으로 인정, 수세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정 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임나일본부를 기존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 새롭게 해석, "어쩌면 지금까지의 양국 학계 갈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모른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교수의 학문적 물음표는 '왜 하필 그 표기가 임나일본부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표기법은 '큰 덩어리'→'작은 덩어리' 순으로 작명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령 '충북+도청'(충북도청)으로 표기하지, '도청+충북'(도청충북)으로 표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의 경우 가장 큰 덩어리인 '일본'이 가운데 들어가 있다.

이와 관련, 정 교수는 지금까지의 논문을 모두 비판, "임나일본부는 '임나'+'일본'+'부'로 분해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임나는 설치의 주최, 일본은 종속요인, 부는 기관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임나일본부를 정 교수의 논리대로 해석하면 '임나에 소속돼 있으면서 일본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던 조직' 정도로 해석되고 있다.

만약 일본학자들의 주장대로 임나일본부를 당시 일본에서 파견된 어떤 조직으로 볼 경우 앞의 논리대로 '일본임나부'로 표기해야 옳다고 정 교수는 밝히고 있다.

논리 흐름상, "그렇다면 임나는 당시 어떤 집단이고, 府는 어떤 일을 담당하던 기관인가"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뒤를 잇고 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임나는 금관가야이고, 府는 한·일 양국 사이에서 통역을 담당하던 집단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그 근거로 ▶금관가야가 멸당한 시기에 임나일본부라는 용어가 정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당시 한반도 남부와 일본 九州 사이에는 해상교역 세력이 존재했던 점 등을 제시했다.

그는 6세기 경의 한반도 남부에서는 일본 구주 지역에서 건너온 해상 교역인들이 많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며 이들은 한반도 남부~일본 구주 지역을 오가며 해상무역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임나일본부는 표현 그대로 임나 즉 금관가야에 소속돼 있던 친일본계 조직이었다"며 "그들은 금관가야가 멸망하자 조직, 신라에 대항에 금관가야의 부흥을 시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광개토왕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신라 등을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당시 금관가야가 신라에 투항했으나 그 잔존 세력을 부흥운동을 전개했고 ▶이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일본에 구조요청을 했고 ▶광개토왕이 격파한 것은 이때 파견된 일본군사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결론으로 "임나는 일본이 설치한 기관이 아닌, 금관가야 왕권과 깊은 관련을 맺은, 양국 언어를 모두 사용하는 집단이었다"며 "이들은 금관가야 지시에 따라 당시 해양교역을 담당하던 집단이었다"고 밝혔다.

▶日학계 주장 임나일본부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적힌 내용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일본서기는 진구황후[神功皇后]가 보낸 왜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와 7국(國)과 4읍(邑)을 점령하였고, 그뒤 임나(任那:伽倻)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으며, 562년 신라에 멸망하였다고 적고 있다.

즉 일본은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으며 중심기관이 가야에 두어진 임나일본부라구 주장해 왔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논리로 악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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