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주변, 하나같이 풍부한 논 토양 존재
이와 관련, 김 교수는 ▶당시 엘리트 계급은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토지 점유권을 늘리기 시작했고 ▶그 점유의 경계 표시로 경관좋은 곳에 거석인 고인돌을 집중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부연 설명으로 "고인돌이 세워진 곳의 주변에는 하나같이 풍부한 논토양이 존재하고 있고, 또 농사와 관련된 석기들이 높은 비율로 출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덤 주인공은 당시 족장급 최고 지배계급이지만 이를 경제적으로 후원한 사람은 상위 유력자로 보여지고 있다.
김 교수는 이 부분을 "당시 상위 유력자들은 고인돌 축조를 경제적으로 후원한 대가로 이념의 정당성과 함께 토지 점유권 확대를 부여받았을 것"이라며 "당시 엘리트들은 그 과정을 통해 지역 정치세력의 구심체 역학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당시 고인돌을 세우는데 동원됐던 인력들은 노동에 따른 반대 급부로 집단적 향연(잔치)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고인돌과 관련된 대형 취락에는 단도마연토기가 압도적으로 많이 발굴된다"며 "이 토기는 당시 잔치에 사용됐던 토기들"이라고 밝혔다. / 조혁연
# 고인돌 유래설
전문가 사이에 3가지 설이 제기돼 있다. 지하에 설치된 돌널무덤(石棺墓)이 지상화되어 고인돌로 발전했다는 자생설과 만주지방에 분포한 대석붕(大石棚)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는 설이 있다.
이밖에 남아시아의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입으로 발생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최초 발생 시기도 청동기를 뛰어넘어 신석기 후기로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조혁연 기자
chohy@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