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선 / 교육평론가, 문학박사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교무실에 출입할 때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으며, 화장실에서도 상급생과 부딪히지 않으려 살짝 다녀오곤 했다. 한마디로 개인 본위가 아니라 윗사람에 대한 존경과 권위가 살아있었다. 적성이니. 개성존중이니 하는 미명아래 학교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도 학생에 대한 교육활동은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직 교장이 지금의 교육을 비판한 글이다. 유감스럽지만 현재 학교장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은 이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용으로 보아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매우 못마땅한 것으로 보인다. '적성'이니, '개성존중이니 하는 미명아래'라는 격정적 표현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육은 적성을 찾아 주며 개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 아니던가.

# 적성과 개성 존중이 잘못된 교육?

교장은 단위학교의 경영을 책임진 사람이다. 경영은 철학이다. 그것도 낡은 철학이 아닌 새 시대의 새로운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런 철학 부재가 학교현장을 어떻게 만들지는 불문가지다. 가장 먼저 환경변화를 읽고 교육적 비전을 제시해야 될 학교장들이 그 변화 추이(推移)를 읽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교육현장은 미래 지향적 공간이 되지 못한다.

흔히 교육을 일컬어 '미래지향적 가치창출' 활동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래'를 읽어야 된다는 것과 이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즉 학생들을 미래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은 산업화 시대를 넘어 지식정보화 사회로 변화되었다. 그런데도 교육현장은 산업사회 시대의 교육적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다. 이런 전 근대성의 하나가 아이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해 주지 못하는,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찍어 누르는 규제 일변도의 지도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학생들을 교문에서부터 철저히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교육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과 달라

산업화 시대의 교육은 규격화된 인간상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산업화 시대는 종말을 고한지 오래다. 이제 위와 같은 기계적인 인간상을 기른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개인이 존중되지 못하는 교육은 생명력을 잃은 죽은 교육이다. 미래의 교육은 '살아있는 교육'을 지향해 가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새로운 변화상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개인이 중심이 되면서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가는 인간상을 위해 교육해야 한다. 학교 교육은 이런 기초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교육현장은 몰개성, 기계의 부품화 같은 산업화 시대의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혀 교육의 미래와 변화상을 읽지 못한 결과다.

#교장선생님 공부 좀 하세요

아직도 교육을 '지시와 전달'로만 인식한다면 그 교육은 이미 죽은 교육이다. 지시와 전달만이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상 가치를 잉태한 교육을 실천해 가기는 어렵다. 이제 현장 교사들은 물론 학교장들도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미래의 교육은 권위보다는 소통이 우선이며 학생들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 그 다양성이 모여 조화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은 죽은 교육을 산교육으로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학교장들의 변화된 인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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