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언복 /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교육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로 아주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본질적으로 교육이라는 게 생존 자체를 위한 수단인 점을 감안하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교육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사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교육에는 시대정신이나 집단의 이념이 반영되게 마련인 때문이다.

어린이 교육을 예로 들면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국가들에서는 무엇보다 자연친화적 교육이 중심을 이룬다.

교실 속 공부가 아니라 틈만 나면 자연 속에 묻혀 흙투성이가 되고 풀숲에 뒹구는 일 등이 교육내용을 이룬다.

인간이 자연의 한 구성원임을 일깨워 주고, 그 세계를 이해하며 친숙해지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미래의 인간세계가 어떻게 변하든지 자연을 떠나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고 현명한 일이라 할 만다.

미국인들의 어린이교육은 일찍부터 자립심을 길러주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생활도구를 다루고 과제를 해결하며 나아가 소용되는 물건을 얻는 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터득하고 스스로 해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가도록 돕는 것이다.

독립된 자율적 존재로서 모든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자 하는 일이니 역시 대단히 합리적인 일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엔 특히 예절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남에게 폐가 되거나 손해를 끼치는 일이 나쁜 일임을 가르치고, 어려서부터 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려는 것이 중요한 교육내용을 이룬다.

인간이란 것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감안하면 이 또한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엔 어떠한가. 우리 교육은 온통 교실 안에서 시작되어 교실 안에서 끝나는 실정이다.

우리 아이들이 경험하는 자연이란 거의가 책과 그림 속의 것일 뿐이다.

교사는 '문제' 생기는 일을 두려워하여 교실 밖 활동을 꺼리고, 부모는 기본적으로 자연 속의 활동은 공부가 아닌 '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자연 속의 수많은 생명들을 오직 풀이니 짐승이니 하는 일반명사로만 알 뿐이다.

대학생쯤이나 되어서도 옷 위에 애벌레 한 마리나 기어오르면 기절할 듯 놀라며 비명을 질러대고, 길 위의 지렁이를 보고도 진저리를 치며 도망친다.

우리교육은 우리보다 훨씬 긴 교육의 역사를 지닌 유럽사람들의 그것과 확실히 다른 셈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크든 작든 모든 일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너 나 없이, 자식의 모든 수요를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는 생각들이 깊다.

대학 보내고 결혼시켜 집 사주는 일까지 부모의 책임이 되어 있으니 더 말하여 무엇할까.

어머니가 막대한 돈 들여 시집 간 딸 국회의원 만들어 주고 법망의 압박을 받는 일은 아마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교육이 미국식 교육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는 하나 내용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크는 아이 기 죽이는 일이 금기시된 맹목적 자식사랑 앞에 예절교육 사라진 지 오래고 버릇없는 아이들 양산되고 있으니, '동방예의지국'이라던 옛말만 떠올려 일본과 비슷하다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교육은 딱히 분명한 교육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추구하고 지향해 가야 할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이루어지는 교육이라면 아무리 많은 재원을 들여가며 애를 써도 거둘 것 없는 빈 껍데기 교육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사람당 한 달 평균 20만원도 넘는 사교육비까지 들여가며 자식교육에 다 걸기를 하다시피하면서도 정작 그 교육이 성취해 내야 할 목적도 목표도 없는 것이라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성적 올려 좋은 대학 가고, 일류대학 나와 좋은 직장 얻게 하는 것이 우리 공동의 교육 목적이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그런 교육현실에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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