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세종시설치법안)이 자동 폐기의 운명을 맞고 있다. 17대 국회 마지막 임시회기의 논의 법률안에 포함되어 마지막 일말의 가능성이 기대되었으나, 해당 행정자치위원회가 논란법률안으로 분류,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번 임시회 회기가 23일로 마감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종시법 처리는 사실상 자동 폐기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따라서 세종시법 제정은 오는 6월 구성되는 18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음부터 새롭게 발의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그러나 18대 국회의 정치 공학적인 지형은 세종시법에 더 비관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곧 출범할 18대 국회는 이른바 여대야소이고, 현 이명박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해 줄곧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같은 징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난 바 있다. 현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소위 '충청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구상에도 행정도시는 '행정중심'은 빠진 채 '세종융합도시'라는 명칭으로 더욱 애매모호하게 표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행정중심복합도시는 '5+2광역경제권'과 '충청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상에 휩쓸리면서 '행정'의 중심이 아닌 정체불명 신도시로 변질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토지보상이 거의 완료된 혁신도시까지 변질·축소될 위기를 맞고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현정부는 민영으로 전환된 공기업은 이전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되면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정책은 사실상 회수되거나 해체의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치철학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걸맞는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이다. 여기에 시비를 걸 의사는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출범직후 치러진 4.9총선에서 왜 유독 충청권에서 완패했는지를 명심해야 한다.

충청도민들은 "우리도 함께 살아보자"는, 어찌보면 소박한 소망을 갖고 있다. 충청권은 지리적으로 수도권과 가깝기 때문에 수도권 규제완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 현정부가 수도권 규제완화 움직임을 보이자 입주를 추진하던 기업은 수도권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고, 입주 상담도 뚝 끊어진 상태다.

이를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충청도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에 역행할 것 같은 정당, 즉 한나라당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것이 4.9총선의 충청권 표심 실체다. 이땅에 수도권 민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 민심도 존재한다. 현정부는 실용을 내세우고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이른바 시장주의다. 그러나 이같은 국가운영철학은 또 다른 지역주의인 '수도권 신지역주의'를 낳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수도권만 의식하는 현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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