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 수봉초 교감

1963년 충남 강경고 윤석란 학생이 병석에 누워계신 선생님을 방문해 선행을 베풀다 당시 청소년 적십자단 JRC (현 RCY)단원 들과함께 별도로 날을 잡아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퇴직한 선생님들을 찾아뵙는 행사를 마련했었다.

이 행사가 충남에서 전국으로 확산되어 1965년 4월 23일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지정돼 올해 25주년을 맞게 된 것이다.

필자도 1972년에 선생님의 첫발을 내디딘지 어언 교직경력이 36년이 지났다. 70년대에는 스승의 날이 없었지만 선생님을 학생, 학부모는 물론 전 국민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경했다.

교직경력 2년째 가정방문 하였을 때 일이다. 시골이라 전형적인 초가삼간의 싸립문에 들어서자 내 반의 아이가 "엄마! 담임선생님 오셨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풍지 찢어져라 안방 문을 박차고 할아버님이 신발 신을 새도 없이 "아이구 선상님 오셨슈!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지유" "아이구 에미야! 빨리 술상 차려라!" 고 외쳤다. 집안에 민방위 훈련에 못지않은 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 땐 10월 하순이라 좀 선선한 날씨였다. 따끈한 아랫목을 내주시며 당신은 방 윗목에 자리 잡았다. 참으로 민망하여 자꾸 사양했지만 어찌나 주저앉히시는지 뜻을 거역 할 수 없었다. "어유! 선상님 우리 철부지 손녀딸을 가르쳐 주시느라고 월매나 속을 썩어유! 고맙구먼유" 나한테도 할아버지뻘인 그 분이 24살 총각 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조아리며 말씀하셨다.

어째 이런 일이! 지금 같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 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다. 그 날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온다. 감격이 쓰나미 처럼 밀려와 입이 찢어져 귀에 걸린다. 그날 씨암탉 잡아 집에 꼬옥 꼭 감춰두었던 흰 쌀알이 동동뜨는 동동주로 황제처럼 대접을 받고 얼간하여 하숙집으로 돌아오며 '햐! 선생님이 되길 천번만번 잘했다'고 쌍박수를 쳐댔다.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인가 스승의 날은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하였다. 한집에 한 두자녀만 두어 옥이야 금이야 기르다보니 웬 공주님과 왕자님이 그리 많은지 선생님이 어찌 그들을 마음대로 가르칠 수 가 있겠는가!

또 선생님은 왜 그리도 많은지 학원선생님, 과외선생님, 부동산 재테크 선생님 등 주변에 선생님 천지이다. 거기다가 사교육이 팽배하여 공교육을 무시하다보니 선생님을 존경은 커녕 훈계하고 감시하고 평가하는 세상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설상가상으로 스승의 날만 다가오면 온갖 매스컴들이 일제히 너도나도 다투어가며 극히 일부 선생님들의 비리, 실수, 무능, 촌지수수 등의 사례를 온 세상에 보도하기 시작한다.

이런 현실에 어찌 선생님들이 스승의 날을 반기겠는가! 오히려 풀죽은 모습으로 고개 숙이고 왜! 스승의 날을 만들었느냐고 원망스러워한다. 국군의 날 국군을, 경찰의 날 경찰을, 소방의 날에 소방관을 질타하고 기죽이는 것을 본적이 없다. 왜 스승의 날만 전후해 선생님들의 기를 죽이는가! 묵묵히 사도의 길을 가는 수 많은 선생님들의 미담을 소개하는데 왜 그리 인색한가!

물론 우리 선생님들도 사도의 길에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점도 한 두가지가 아니라고 본다.

전국의 선생님들이여 두 눈 꼭 감고 가슴에 손 얹고 반성해 봅시다. 먼 훗날 제자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훌륭한 멋진 선생님이 됩시다. 그리하여 스승의 날을 떳떳이 맞읍시다. 제자들에게 존경받읍시다. 학부모님들께 신뢰를 받읍시다. 사회로부터 격려의 박수를 받읍시다. "나는 무명 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전투를 이기는 것은 위대한 장군이로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름 높은 교육자로되,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나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는 보상이로다.

무명교사 예찬론의 한 구절을 되뇌이며 강호동의 '무릎 팍 도사'의 한 장면을 떠 올려본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선생님들이여 기를 받으라 팍~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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