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당을 두드리고 소나기 지나가자 놀란 지렁이 몇 마리 서둘러 기어간다 방금 알을 낳은 암탉이 성큼성큼 뛰어와 지렁이를 삼키고선 연필 다듬듯 부리를 문지른다

천둥 번개에 비틀거리던 하늘이 그 부리 끝을 중심으로 수평을 잡는다 개구리 한 마리 안마당에 패대기친 수탉이 활개치며 울어 제끼자 울 밑 봉숭아며 물앵두 이파리가 빗방울을 내려놓는다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 섞어 부르며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

모낸 무논의 물살이 파르라니 떨린다 온몸에 초록침을 맞은 하늘이 파랗게 질려 있다 침 놓은 자리로 엄살엄살 구름 몇이 다가간다 개구리 똥꼬가 알 낳느라고 참 간지러웠겠다 암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논 쪽을 내다본다

- 이정록 시집 '의자'(문학과지성사, 2006년) 중에서


* 참 생동감 넘치는 시입니다. 소나기 내리다 그친 뒤의 안마당 풍경을 그리고 있는 이 시의 1연 2연은 쏟아지는 소나기와 함께 활력이 넘칩니다. 안마당을 두드리는 소나기. 빗줄기에 놀라며 서둘러 기어가는 지렁이. 방금 알을 낳고는 뛰어와 지렁이를 삼키는 암탉. 천둥 번개 치던 하늘. 개구리를 잡아 패대기치는 수탉. 수탉의 활개치는 소리에 빗방울을 떨구는 봉숭아와 물앵두 이파리. 소리치며 몰려다니는 병아리들. 모두 활기찬 움직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중에도 병아리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고 표현한 건 압권입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 소나기가 있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연쇄적으로 벌어진 풍경들입니다. 이 시는 소나기란 사람들을 다급하게 하고 당황하게 만드는 비라는 사람 위주의 통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소나기 자체가 생명력의 원인이 되는 힘으로 있습니다. 이 시에서 사람은 위에 열거한 사물들을 지켜보는 관찰자로 있을 뿐입니다. 소나기에서 비롯된 생명을 가진 것들의 꿈틀거림과 살아 있음을 표시하는 몸짓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봅니다. 그리고 소나기가 쏟아진 뒤의 동적인 상황에서 천천히 정적인 상황으로 옮겨 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3연의 파르라니 떨리는 무논의 물살. 파랗게 갠 하늘. 천천히 지나가는 구름. 개구리가 낳아놓은 알. 그것을 지켜보는 암탉의 모습은 정적인 풍경입니다.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뒤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풍경입니다. 아니 더 고요해지고 맑아진 풍경들입니다. 요즘 자주 비가 내리거나 하루 한 차례씩 소나기가 쏟아지곤 합니다. 우리는 빗속에서 눅눅해지는 옷가지 걱정을 하거나 곰팡이 피는 방안 구석구석을 걱정하지만 소나기야말로 살아 있는 수많은 것들의 활력이 되는 자연현상이며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것임을 시인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정록 약력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제비꽃여인숙'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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