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첫 번째 정사에서, 왕치아즈(탕 웨이)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두운 곳을 싫어하며 누구도 믿지 않는 남자 이(易, 양조위).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그의 철저한 '계(戒)'를 드디어 '색(色)'이 접수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오판한 건, 역시 의욕만 앞서는 아마추어다웠다. 이 틈을 노회한 이는 놓치지 않았고, 맹수처럼 여자를 공격한다. 때리고, 찢고, 밀어붙이며 경고하는 것이다. 자신과 '놀기'를 원한다면 좀 더 '연기'를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을.
# 이 영화는
■양조위 = 리 안 감독은 "모든 감독의 꿈"이라 했고 누군가 "무엇을 해도 용서되는 배우"라 말한 양조위(1962년생)는 왕치아즈의 성장영화로 갈음되는 '색, 계'에서도 여전히 시선을 압도한다. '나쁜 남자'의 DNA 자체가 없는 것처럼 악역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존재는, 친일 매국노, '왜놈들의 개' 이에게 풍부한 깊이를 더한다. 비열하고 냉혹한 가운데 알 수 없는 여백을 갖는 인물로, 절체절명의 위기감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한 남자로 이를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배우 양조위로부터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상처나 연민, 슬픔은 영화 '색, 계'를 종종 위험하게 몰고 가는 원인이 된다. '공공의 적'-양조위에 대한 관대한 동일시는, 일종의 정치적·역사적 면죄부가 되어 자칫 영화의 '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사장면 = 미국에서 NC-17등급을
받았고, 중국에서는 30분 삭제 후 개봉될 수 있었던 20분에 걸친 3차례의 정사 장면은 감독과 배우들, 촬영, 조명, 음향 감독 등 소수
인원들만이 참여해 11일 동안 가장 먼저 촬영됐다. 그러나 마구 부풀려진 소문보다도 더 노골적이고 놀라운 육체들을 전시하는 이 장면들이, 영화가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주목할 만한 한 태도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다. 차라리 살벌한 전쟁 액션 장면이라 불러 마땅할 세 차례의
정사는 '색'과 '계'의 팽팽한 쟁투와 상승작용을 통해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소개하고, 감정 변화를 용의주도하게 설득하며, 관객들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도록 몰입시킨다. 그토록 적나라하게 다 보여주는데도 관음증을 충족시키기보다 차라리 두려움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장면들은 진정 놀랍다. 물론 배우들의 '투신(投身)'이야말로 길고 열렬한 박수의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