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오세영 시집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시와시학사, 1991년) 중에서

* 많은 이들이 바다를 찾아 떠나는 휴가철입니다. 이 시속에서 말하는 이도 바닷가에 서 있습니다.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다는 생각이 들 때 파도를 보라고 합니다. 바닷물은 아래로 아래로 가장 낮은 곳을 택해 흘러와서 거대한 바다가 된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가 가장 크고 깊게 되는 것입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바닷가에 지는 해를 보라고 합니다. 어둠 속으로 고인 빛이 마침내 여명을 밝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포기하면서 얻는 충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가물가물 떠 있는 섬을 보라고 합니다. 홀로 견디는 것의 순결함. 멀리 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섬에서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를 배우라고 합니다. 이번 여름 바닷가에 가시거든 그대도 이런 겸손과 포기하는 지혜와 견딜 줄 아는 자세를 만나고 오시기 바랍니다.

▶오세영 약력

1942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연시' '불타는 물' 등의 시집과 '한국낭만주의시연구' '서정적 진실' 등의 연구서가 있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만해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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