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매봉산 아래 아늑하게 위치한 우리 동네 공원에는 갖가지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오십 견 예방 및 치료방법에 좋다는 양팔을 좌우로 돌리는 기구, 180도 허리 좌우 돌리는 기구, 자전거타기, 두발 올려놓고 앞뒤로 온몸을 흔드는 기구, 한쪽 발씩 앞뒤로 보폭을 넓혀 걷는 기구, 이밖에 역기 외에도 10여 가지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조석으로 열심히 운동을 한다.

며칠 만에 운동을 하려고 나갔는데 큰 변화가 생겼다. 그 많은 운동기구 중에 역기가 사라졌다. 혹여 그런 일이 있을까 싶어 역기는 단단한 장치를 해놓았던 것 같았다. 누군가 역기를 훔쳐가기 위해 역기를 장치한 쇠기둥을 쇠톱으로 자른 자국이 뚜렷하게 보인다. 대낮에 쇠기둥을 자르고 역기를 가져갔을 리는 없을 테고, 한밤중에 쇠톱으로 그 둥근 기둥을 자르려면 그래도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텐데 어찌 그리 감쪽같이 도둑을 맞을 수가 있을까….

▲ 요즘도 굶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쌀 도둑은 없어진 것 같다. 가끔 도로에 있는 하수구 철판, 전화선 등 공공기물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접 할 때면 과연 그 물건을 팔아서 얼마만큼의 돈을 만질 수가 있을까 의아해 했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운동 할 수 있는 역기를 도둑맞았다. 역기가 사라진 빈자리는 쇠톱 자국만이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한밤중에 역기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사라진 것이다. 인적은 드물었겠지만 바로 아파트단지 옆에 있는 공원이니 톱질하는 소음도 났을 법도 한데 어찌 그리 감쪽같이 무거운 역기를 훔쳐 갈수가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많은 물건 중에 건전한 운동기구를 훔칠 생각을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철부지나이는 그 역기를 들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20~30대 청년일까? 아니면 나이 많은 아저씨일까. 공공기물인 역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밤새 쇠톱 질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도심盜心은 어떤 때 유발 되는 것일까? 어떤 여성은 생리 기간 중에 일시적인 현상으로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붙들려 사건이 되었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물건을 훔치는 일은 익히 들어왔었지만, 생리적인 현상으로 유발되는 심리적인 변화이기에 딱하다는 생각을 했었다.아주 오래된 이야기로, 내가 새댁 시절, 그 때만 해도 쌀이 무척 귀했었다. 광에 아침쌀을 뜨러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쌀 뒤지를 열었을 때 가득하게 채워있던 쌀이 바닥이 나 있었다. 너무도 놀라 웃어른들께 말씀드리고 112에 신고를 하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때는 아주 큰 개를 집 지킴이로 기르고 있었는데 전날 밤에는 개도 짖지 않았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대문 옆에는 도둑이 인분을 한 무더기 누워놓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집지킴이 우리 개는 눈알이 발갛게 충혈이 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주인을 발견하고는 킁킁거리고 비실거리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듯 꼬리를 흔든다. 도둑이 던져준 수면제를 넣은 빵을 먹은 것이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한참 만에 관내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간밤에 쌀을 훔친 사람을 데리고 있으니 빨리 파출소로 오라며 쌀은 성둑 아래 있을 것이니 그곳에 가 보라는 것이었다. 남편이 그 전화를 받고 우리 집에서 한참 떨어진 성 둑 아래 있는 쌀자루를 발견했다. 파출소에는 중년 남자가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하며 조서를 받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쌀 한 자루를 지고 가다가 너무도 무거워 성 둑 아래서 쉬었다 갈 요량으로 앉아 있다가 수상하게 여긴 파출소 순경에게 발각되어 쌀자루는 그 자리에 놓은 채 잡혀 갔던 것이다. 그 쌀 도둑은 다섯 식구가 며칠째 끼니를 거르는 고통을 어찌 할 수가 없어 쌀을 도둑질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청주역전에서 지게품팔이를 하던 사람인데 먹고살기 힘들어서 쌀 한 가마니만 있으면 두어 달 살 것 같아 그런 잘못 된 짓을 저질렀다며 남편에게 눈물로 용서를 구했던 일이 생각난다. 며칠을 굶었으니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처 와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게다.남편은 그 도둑이 너무 측은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파출소에서는 경찰서로 보내겠다는 것을 남편은 잃어버린 쌀도 찾았으니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다. 결국 남편은 그 사람의 신원 보증을 서주고 데리고 나왔다. 추운 날씨에 처벌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되었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 가족들이 생각나, 떨고 있는 그 도둑에게 아침 해장국을 사주고는 쌀 한가마니 값 정도의 현금을 주어서 보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요즘도 굶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쌀 도둑은 없어진 것 같다. 가끔 도로에 있는 하수구 철판, 전화선 등 공공기물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접 할 때면 과연 그 물건을 팔아서 얼마만큼의 돈을 만질 수가 있을까 의아해 했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운동 할 수 있는 역기를 도둑맞았다. 역기가 사라진 빈자리는 쇠톱 자국만이 흉물스럽게 남아있다.배가 고파서 쌀을 훔친 도둑은 연민의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었으나 국가 공공기물인 운동기구를 훔쳐간 그 사람에겐 연민의 정을 느낄 수가 없다. 그 사람은 지금쯤 열심히 체력단련을 하고 있을까. 체력과 정신까지 건강해져 훔쳐간 운동기구를 있던 자리에 되가져다 놓기를 소망해본다.
김정자

▶청주출생
▶'한국수필'로 등단
▶청주시문화공로상 수상(2002)
▶법무부 전국교정수기공모전 최우수상 수상(2006)
▶한국수필작가회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장(현)
▶이메일: albina06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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