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화 / 토공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1본부차장
만덕은 조선시대에 거상(巨商)이었다. 여자이니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CEO라고 거창하게 얘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만덕은 양인이었으나 마진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부모를 잃고 노비와 다름없는 기생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기생은 그 세가 대단해 양반들도 뇌물을 줄 정도였다고 하니 배고픔은 면할 수 있을 테지만 만덕은 밥을 굶으면서까지 제주목사를 졸라서 양인이 되고 객주를 차려 돈을 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관철했으니 요즘에 고통을 회피하려는 젊은이들이 본받아야할 정도이다.

만덕전을 쓴 정조 시대의 정승이었던 채제공에 따르면 만덕은 돈을 버는 재주가 출중했다고 한다.

그녀가 돈을 번 방법은 유통의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제주에서 나는 물품이 강경까지 가는데는 나주나 영암에서 말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만덕은 칠산 앞바다라는 거친 파도를 헤치고 배로 강경까지 물건을 운반했다.

제주 토산물을 배를 이용해 운임이 싸고 대량으로 운반할 수 있었으니 당연히 가격이 저렴해 경쟁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으로 돈을 번 만덕은 갑인년 극심한 흉년이 조선을 강타했을 때,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을 털어서 굶주리는 제주의 백성을 구휼했다.

당시 추자도에서 조정에서 보내 구휼미를 실은 배가 침몰해 제주도는 순간적으로 죽음의 섬이 되어 버렸다.

만덕은 이를 그냥 두지 아니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이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던 만덕의 고결한 정신이 잘 드러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어려운 만큼 빈곤한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고통은 클 것이다. 그들 중에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가장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 부자와 가진 자들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필자가 보상업무중 만난 사람 중에는 탐욕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무지하고 가난한 농민을 겁박해 그들에게 돌아갈 보상금을 중간에 가로챈다.

그들은 그것을 능력이라는 말로 치장을 해 버린다. 필자가 보기에는 철면피인데 말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천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실정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가끔씩 평생 모은 재산을 기탁하는 사람이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낯이 부끄럽다.

살기가 어려워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버릇처럼 만덕을 떠올린다.

만덕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도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 추진하는 국책사업이다.

모두가 뜻을 모아서 이 목표를 달성하여야 한다.

특히 이곳을 떠난 원주민들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훌륭하게 건설되어 그곳에 살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조그마한 사욕이나 개인의 영달을 위해 행정도시건설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이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접근하지도 못하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지 않을까.

이파리가 점점 더 노랗게 혹은 빨갛게 물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도, 그리고 우리 국민도 점 더 성숙하고, 남을 배려하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신문에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제하로 글을 쓰는 것이 도로(徒勞)에 불과한 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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