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언복 /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국권상실기 고향을 잃고 남의 나라 땅을 전전하던 백성들을 흔히 '유이민(流移民)' 이라 부른다. 가장 큰 한인 유이민사회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만주'가 대표적이었다. 이들 유이민 발생현실을 문제삼고 그 실상을 반영해 낸 문학을 일반적으로 우리는 '유이민문학'이라 부른다.

이같은 유이민소설 가운데 이광수의'삼봉이네 집'이라는 것이 있다. 합법을 가장한 토지수탈 기관이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소작지를 빼앗기고 살 길을 찾아 서간도 이주길에 오른 삼봉이네 일가의 수난을 그린 작품이다.

이제 막 얼음이 풀린 계절에 눈 앞에 닥친 봄 농사를 위해 '울로초'를 캐내며 땅을 일구는 장면을 실감있게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는 땅이 모든 인간들의 삶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는 민족이 왼편 오른편 갈리어 싸우다 결국 전쟁이라는 미증유의 민족적 비극을 초래한 것도 '땅 문제'가 주요 원인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북한 최초의 장편소설로 일컬어지는 이기영의 '땅'에서는 비로소 자기 몫의 땅을 얻게 된 백성들의 감격을 들려주고 있다. 1945년 8월, 처음 평양에 나타난 생면부지의 김일성이 수많은 정적들을 물리치고 단시일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 '땅'을 소수의 지주들로부터 빼앗아 다수의 농민들에게 나누어 준 토지개혁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진부한 얘기지만, 세상에 땅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이란 아무도 없다. 땅을 잃는 일은 곧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이며,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목숨을 건다. 하루하루의 양식을 얻는 논과 밭이 더욱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온갖 것을 다 잃어도 식량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식량은 생존을 위한 궁극적 수단이며 최후의 방편이기도 하다. 그 식량이 바로 논과 밭의 산물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이 땅 한평을 얻기 위해 죽고 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들이 넓지 않은 산간마을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다락논들을 보면 옛사람들의 고단한 숨결이 느껴진다. 지리산 연곡사를 지나 피아골을 향하는 길, 경상도 함양 백운산 가는 길, 계곡을 따라 가파른 산비탈에 일일이 돌을 쌓아 둑을 만들며 조성한 계단식 논들을 볼 때마다 나는 땅에 대한 조상들의 절절한 애착을 느끼며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되곤 한다.

부모 봉양하며 처자식 배곯리지 않고 먹고 사는 일을 최고의 행복으로 알고 살던, 소박하면서도 티 없이 맑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선인들의 마음과 정신이 그곳에 오롯이 배어 있는 때문이다. 우리 사는 땅 어느 곳 하나도 저절로 논이 되고 밭이 된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결코 함부로 헐고 파헤칠 일이 아니다.

대전 갑천면 넓은 들에 새길을 내고 집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곡괭이로 나무뿌리를 캐내고 삽 하나로 둑 쌓아올리며 일궈낸 그 좋은 '옥답'들이 굴삭기 굉음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아무도 그런 생각 안 드는 모양인데 나는 자꾸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며 안타까운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땅은 그렇게 함부로 대할 것이 아니다. 들쥐들이나 숨어 살고 풀벌레나 깃들여 사는 척박한 땅일지라도 다를리 없는 일이지만, 더욱이 선조의 피땀으로 일구어 내고 그곳에서 먹고 살 양식을 얻어 수백, 수천년 동안 아들 딸 키워 내고 손자 손녀 낳아 기른 논 밭을 그렇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찬밥 한 덩어리로 허기를 달래가며, 손 끝에 피가 맺히고 발바닥에 군살이 배기도록 쭈그리고 앉아 자갈 주워내고 풀뿌리 뽑아 일궈 낸 논 밭을 그렇게 함부로 파헤쳐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다. 식량이 무기되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일이 명백한 것도 사실이고 보면 이는 더더욱 안될 일이다. 표언복 /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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