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중 / 청원 남이초 교장, 소설가
어느덧, 고정 필자가 되어 정기적으로 이 지면을 채우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시론'이라는 것이 시사성을 띠어야 하기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문화 쪽으로 많이 접근하게 된다.

오늘도 그쪽의 이야기를 거론하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지금은 폐간된 '월간충청'이라는 잡지에 필자가 1988년부터 1989년까지 2년 동안 연재했던 연작수필 '육아일기'의 한 토막이다.

<퇴근해 집에 돌아가니 아내가 채 두 돌도 지나지 않은 꼬마의 책을 무려 오십만 원어치를 들여놓았다. 미리 간단한 상의가 있기는 했지만 일이십만 원어치도 아니고 해서 조금 짜증을 냈다. 아직 아이에게 작은 글씨의 그 많은 책들이 필요치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꽤 많은 이야기들이 짜증에 섞여서 왔다 갔다 했는데 내 얘기는 줄곧 낭비라는 쪽으로 돌았고 아내의 얘기는 그게 아니라는 쪽으로 돌았다. 아내는 두고 보라고 강변했다. 반드시 책의 효용이 실증되리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은 이내 사실로 들어맞았다. 책을 사들인 이후, 아이는 틈만 나면 소파에 묻혀 책을 읽었다. 읽고, 읽고, 또 읽고……. 이미 읽은 책들을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나이의 녀석이 그토록 열심히 책을 읽다니, 대견했다. 아내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녀석이 그렇게 독서에 열중하게 되면서 내게 큰 고민이 생겨버렸다. 녀석이 책 속의 내용을 두고 자꾸 질문을 해 왔던 것이다. 그 나이의 녀석이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이 당연히 맹랑하고 엉뚱하기 마련이어서 답변을 하기가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답변을 해 주면 뒤꼬리의 의심나는 것을 다시 물고 늘어지곤 했다. 그러던 날들 중의 어느 한 날이다. 곁으로 다가온 녀석이 대뜸 말했다.

"아빠, 앵무새는 암컷과 수컷을 코의 혹으로 구분하는 거야. 암컷의 코 혹은 푸른색이래. 그리고 앵무새와 잉꼬는 같은 말이야. 잉꼬는 일본말이기 때문에 앵무새라고 고쳐 써야 한대."

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앵무새와 잉꼬가 같은 말이라니. 내가 알기로 잉꼬라는 새는 가정에서 흔히들 기르는 새이고,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귀하고 비싼 새인데, 같은 말이라니.

"그걸 어디서 알았니?"

"응, 내 책에 있어. 기다려. 내가 보여줄게."

제 책꽂이에서 '앵무새'라는 제목의 책을 가져온 녀석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펼쳤다. 녀석의 말은 정확했다. '잉꼬는 앵무새의 일본말이다. 고쳐 써야 한다.'고 조류학자 원병오 박사는 지적하고 있었다.

이튿날, 직장 동료들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잉꼬라는 새, 본 적 있습니까?"

자신있게 보았다고들 했다.

"앵무새는?"

"글쎄, 아직 못 보았는데. 책이나 텔레비전에서는 보았지만."

모두들 그랬다. 잉꼬가 바로 앵무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아이에게 많은 책을 사 준 아내의 판단은 현명한 것이었다>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오류는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백과사전들이 그러한 오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잉꼬와 앵무새를 구분해 소개하고 있다. 다만, 두산대백과사전만이 아래와 같이 바르게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잉꼬는 앵가(鸚哥)라는 한자를 일본어로 읽은 이름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앵무새와 동일한 종류의 새를 이야기한다. 일본에서 앵무새를 간단히 구분하는 과정에서, 몸집이 큰 앵무새를 앵무새라고 부르고, 몸집이 작은 앵무새를 잉꼬라고 부름으로써, 이것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정착되었다'. 최창중 / 청원 남이초 교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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