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 장인산 / 천주교 청주교구청 총대리 신부

어떤 동네에 위에는 사람들이 건너다니는 다리, 즉 육교가 있었고, 그 밑에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짧은 터널이 있었다. 어느 날 화물차 한 대가 짐을 높게 싣고 그 육교 밑 터널을 지나가려는데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화물차의 높이가 그 터널 천장의 높이와 꼭 같아서 차가 통과하지 못하고 그 속에 끼어서 옴짝 달싹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화물차는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에 운전자의 연락을 받은 부서의 담당자들이 출동하였다. 경찰관들이 달려오고, 소방대원들도 현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구경꾼들도 모여오고 그 마을의 책임자들도 함께 모이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사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뾰족한 수를 찾기가 힘들었다.

화물차를 손 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육교를 부수거나 해체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임을 확인할 뿐 이렇다할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꼬마 어린이 하나가 그 현장에 와서는 자기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전문가로서 그 어린아이를 소홀이 여겼다. "네 까짓게 뭘 안다고 그러니? 어서 가! 얼쩡대지 말고! 도대체 네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데?"하면서 윽박지르듯이 그 아이에게 말하였다.

그때 그 아이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화물자동차의 바퀴에서 바람을 얼마씩 빼면 되잖아요!" 사람들은 모두 그 아이의 지혜로운 대답에 놀라워하며, 그 아이의 말대로 화물차 바퀴에서 조금씩 공기를 빼내기 시작하였더니, 꼭 끼었던 차가 움직여 빠져 나올수 있게 되었다.

어린아이의 말이라고 무시하고 귀담아 듣지 않고 어른들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내쫓으려고 했던 나름대로 전문가라고 자부했던 어른들의 위신과 권위적인 태도는 일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은 어린아이라고 무시했던 그 아이에게서 나왔다. 우리는 나보다 경력이 없다거나 나이가 어리다거나 또 배운데 없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려 들지 말고, 잘 경청하는 태도를 갖는다면 삶의 지혜를 어떤 사람에게서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장인산 / 천주교 청주교구청 총대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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