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리 /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이번 4월 25일은 대한제국 시기인 1895년 '재판소구성법'에 의해 근대적 사법제도가 시행된 지 114주년이 되는 날이다.

'재판소구성법'은 근대 법령 1호로서 우리나라 법제근대화의 시작이다. 이런 의미를 고려하여 매년 4월 25일을 '법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해마다 '법의 날'이 되면, 법률 유관 기관과 단체에서는 기념식을 갖고 법과 원칙 또는 법치주의 이념을 강조한다. 그런데 법은 무엇이고 법치주의는 또 무엇인가.

법은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이 공통의 선(善)을 실현하기 위해 양보와 타협을 거쳐 만든 약속이다. 그리고 법치주의는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통해 자유·평등·정의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법을 적용하고,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한다.

선진국 시민들은 기초질서를 잘 지킨다. 또한 정치인들도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법에 정해진 방법에 따라 의견을 표출하고 의사를 결정한다.

반면 후진국도 법치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법을 지키는 정도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못하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시민들이 법을 얼마만큼 잘 지키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법치주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후진국 중 어디에 속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이 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이 법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다른 차량이 끼어들기를 하거나 신호를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요행으로 여기거나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법위반사실을 들켰을 때에는 법 적용의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억울해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법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잘못된 사고도 아직 남아 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과 사고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법무부는 '법질서 바로세우기 운동' 등을 통해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작은 기초질서부터 잘 지키고, 서로 신뢰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법치주의가 법과 원칙의 준수만을 강조하는 형식적·기계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경제적 약자나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실질적 법치주의야말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법치주의 이념인 것이다.

최근 경제위기의 여파로 서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으며 위기에 처해 있다. 서민들에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어 형사처벌을 할 경우 한계상황까지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검찰은 서민 생활의 안정을 꾀하고 자립의지를 북돋우기 위하여 '서민생활안정을 위한 검찰권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실직자 이모씨는 간암 투병중인 부친 병원비 마련을 위해 무허가 과외교습소를 열었다가 적발되었다. 당연히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지만 청주지검은 이씨의 딱한 사정을 참작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하였다.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법 적용을 통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검찰에서 실현하는 실질적 법치주의의 단면이다. 이 같은 노력이 쌓여 나갈 때 법치주의가 질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에서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일류국가로의 도약은 우리 생활 속에 뿌리내린 법과 원칙의 준수 및 법치주의의 존중을 통해서 가능하다. 말로만 법을 존중한다고 법치주의가 실현되고 선진일류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의 날'을 맞이하여 구호로서의 법이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법을 생각해본다.

한석리 /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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