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식 / 건양대 의공학과 교수
10세에 고아가 되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던 미국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돈을 '땀과 눈물의 종잇조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였지만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자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긍정적이고도 낙관적인 인생관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너 루스벨트. 다름 아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지요. 루스벨트 여사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여섯 자녀 중에 하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아직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자녀가 다섯이나 있는 걸"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인생 말년에 대통령을 지낸 남편 루스벨트가 관절염으로 휠체어 인생이 되어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을 때 루스벨트가 그녀를 그윽이 응시하면서 "아직도 나를 사랑하오?"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엘리너는 따뜻하고 확신에 찬 음성으로 "그럼 내가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다리 뿐인 줄 아셨습니까. 당신 전체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지요.

우리들의 주변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는 마음과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밝고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말은 사람을 살리는 반면에, 부정적 언어는 사람을 파괴하게 됩니다. 불평 대신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남의 단점보다 장점을 말하도록 합시다. 비판하는 말보다 칭찬하는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한 여류 화가가 열심히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평론가가 그림에 대해 "당신의 작품은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도 와 닿으나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고 평합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이런 취지의 비평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이것을 접하는 순간, 그 여류 화가는 다른 평론가들이 했던 격찬과 긍정의 말은 다 잊어버리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한 평론가의 말이 기억 속에 치명적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깊이'라는 두 글자에 집착을 합니다. 그리고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히지만, 깊이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비관해 술과 약물로 세월을 보냅니다.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린 그녀는 결국 깊이 없는 자신의 그림들을 전부 찢어버리고 139m의 텔레비전 방송탑에서 깊이를 알기 위해 몸을 아래로 던져버리고 맙니다.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가버린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 수많은 칭찬보다 비판을 가하는 말 한마디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력해지고 마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말은 자신에게 하는 예언입니다. 우리가 패배를 생각하고 말로써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면, 우리 행동은 그대로 따라갑니다. 말을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말에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고,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간에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에 생명을 부여하게 되지요.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함으로써 실패의 삶을 삽니다.

'말이 씨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심어져 생명력을 얻어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그 내용과 똑같은 열매를 맺지요.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의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펼쳐지고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패배와 실패를 말하면서 어떻게 승리의 삶을 원합니까. 자동차 운전중에 운전대를 좌측으로 돌리면서 어떻게 우회전하기를 기대합니까. 뿌린 그대로 수확합니다. 최규식 / 건양대 의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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