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 청주교육청 초등교육과장 | ||
초등학교 3학년 되던 해 담임선생님과의 소개부터 기대로 출렁였다. 청주사범학교 졸업 후 첫 발령으로 오신 새내기 선생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고등학생 처럼 짧은 머리에 4km가 넘는 길을 꼬박 걸어서 출·퇴근하시며 아무리 추워도 호주머니에 손 한번 넣지 않으신 채 꼿꼿한 모습을 지키셨다. 언제나 부모님처럼 나즈막한 말씀으로 '공부란 쉽고도 재미있는 것'임을 심어 우리반 모두 소위 자기주도적 학습에 푹 빠지고 말았다.
우리의 우상이신 선생님의 퇴근길엔 반 친구들이 모두 따라나서 절반정도 거리를 배웅하며 아쉬워했다. 비록 짧은 1년이었지만 내 인생의 진로가 터득되는 큰 희망을 얻게 되었다. '꼭 담임선생님 닮은 교사'가 되려는 꿈을 지피기 시작한 출발점이었으니 그 보다 더한 감동적 인연를 어디서 찾겠는가.
교육대학을 나오자마자 딴에는 곧장 교단에 올라 선생님의 역할을 흉내내려 했지만 마음이 앞설 뿐, 가르침은 예상외의 많은 오류를 낳고 말았다.
교직생활 20년이 막 지났을 무렵, 인연의 끈은 다시 이어져 어쩜 필연처럼 선생님 계신 학교로 자리를 옮겨 교감과 교사로 설렘 가득한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됐다.
교실 창 너머로 시멘트 분진이 황사처럼 기웃거릴 뿐, 문화 혜택이라곤 전혀 없는 광산촌 학교에 교실 두 칸 너비로 만드신 갤러리에서 전교생에게 물감 붓을 쥐어주고 예술 싹을 틔워내던 선생님은 '변화에 대응하는 당신 만들기'의 실천으로 그때부터 벌써 교육혁신이란 자양분을 공급하고 계셨다.
낮엔 아이들과 묻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퇴근 후면 곧장 서너평 쯤 씩 나눠진 사택으로 돌아와 선생님께서 가늠해 주신 쌀뜨물을 부어 지은 밥과 텃밭에 가꾼 채소까지 반찬이 되어 입맛도 붙어 갔다. 비가 내리는 늦저녁이면 부엉이 소리에 감정을 뺏겨 잠까지 설칠 때, 선생님께서 별도과외로 지도해 주신 '바른 삶의 행보'는 유일한 보고로 각인 되었다.
허준을 평생동안 명의로 키워낸 스승 유의태처럼, 궁리와 처방을 판단해 가며 경험하는 기회를 숱하게 마련하신 은사님은 가르침의 범전이셨다.
한 해가 좀 넘어 은사님은 교장선생님으로 제자인 나는 장학사가 되어 이별의 짐을 챙겨야 했다.
8년 전, 정년으로 떠나시는 자리에서 은사님은 "상봉초등학교 3학년 1반 반장 오병익"을 호명해 세우시곤 초임시절을 자세히 소묘하시던 중, 퇴임의 말씀을 몇 번이나 도막내며 울먹이셨다.
지금은 장학관이 된 제자에게 "사도야 말로 인생의 참된 자기를 가꾸는 길"이라며 푸근한 웃음을 섞은 평생 여운의 메시지를 주신다. 교육현장을 향한 볼멘 소리가 무거울 때마다 스승님의 너른 품이 그리운 걸 어쩌랴. 대잇기의 청출어람이 퇴색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둥지를 손질해 본다.
은사님 말씀처럼 날이 갈수록 부쩍 공교육이라는 엄청난 굴레 속에서 가르침의 두려움이 짙어온다 해도 '앉아서 햇볕을 기다리지 않고 끌어오는 제자가 되도록 노력'하리라. 오병익 / 청주교육청 초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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