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중 / 청원 남이초 교장
2007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충북소설가협회의 정기모임이 초행인 사람들은 찾기도 힘든 청원군 오창읍 신시가지 입구의 한적한 오솔길에 자리한 어느 오리집에서 열렸다.

지금은 도청으로 직장을 옮긴 당시의 회장 지용옥 선생께서 청원군의 부군수로 계셨기 때문에 자신이 몸담은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서 반드시 그곳에서 모임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택하게 된 음식점이었다.

주변의 도로를 몇 바퀴나 돈 뒤 어렵게 찾아들어간 음식점에서 그날 나는 회원들에게 억지로 등 떠밀려 충북소설가협회의 회장이라는 감투를 썼다. 당시 내가 처한 딱한 사정을 설명하며 일 년 후에는 반드시 소임을 받겠다고 두 손 싹싹 빌며 한번만 봐달라고 통사정을 했는데도 모인 사람 모두는 우격다짐으로 내게 짐을 맡겼다.

그렇게 억지로 물려받은 자리를 김창식 사무국장 덕분에 겨우 꾸려오며 최소한의 면피라고 할 수 있는 기관지 '충북소설 11집'도 무사히 발간했다. 그곳에 내가 쓴 발간사를 소개한다.

<'오랜만에 소설 쓰는 사람들 여섯 명이 모였다. 소설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게 되면 그 장소는 온통 긴 글쟁이들다운 긴 사설과 사설만큼이나 푸짐한 소주병으로 질펀하게 깔리기 마련이다.

그 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만난 지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스무 개가 넘는 소주병이 쌓였다. 시나브로 좌석은 쌓인 소주병의 수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실수 비슷한 행티를 보이는 사람을 출현시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안 해도 좋을 소리를 주섬주섬 늘어놓아 상대편을 민망스럽게 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그들의 그런 허물어진 모습을 보며 나는, 어휴, 저 비범한 바보들, 하고 생각했다. 어느 모로 보나 소설 쓰는 사람들은 미련퉁이들이었다.

시인들은 몇 줄 안 되는 글 속에 자신의 생각을 쉽게도 집어넣는데 소설쟁이들은 그 긴 글을 쓰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쉽게 접목시키지 못해 밤샘마저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쟁이들은 술을 마시는데 있어서도 역시 미련해서 술잔이 탁자에 놓일 사이 없이 바쁘게 오갔다. 자연히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아 모두는 고르게 취했다. 서서히 그들은 함께 술독으로 들어갔다 갓 헤엄쳐 나온 듯한 모습으로 둘씩 혹은 셋씩 붙어 앉아 취객들 특유의 방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이상은 1996년에 발표한 졸작 '비범한 바보' 속의 한 장면이다. 당시 회원들의 모습은 글 속의 모습과 꼭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 분들은 세월이 흐른 것만큼이나 연로하여 소주병의 수를 당시의 반 정도도 늘어놓지 못한다.

하지만 글만큼은 더욱 농익어 이 사회의 모순을 향해 예리한 칼날을 기운차게 휘두른다. 세인들의 관심은 조금씩 조금씩 소설에서 떠나가고 있는데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린 채 소설쓰기라는 작업에 미련스럽게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비범한 바보들'이다.>이번 책에는 유난히도 '비범한 바보들'의 신작소설이 많이 실렸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분들인데도 필생의 작업인 창작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원로 소설가인 강준희 선생이 '그런 머리로 어떻게 소설을 쓰나?'를, 동양일보 논설위원인 안수길 선생이 '심장과 군화'를, 역시 동양일보 논설위원인 박희팔 선생이 '향촌삽화?5'를, 충청북도 문화관광환경국장인 지용옥 선생이 '마누라 버섯'을, 황간고 전영학 교장이 '바람 부는 객석에서'를,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인 김창식 선생이 '평행선' 등의 신작을 발표했다.

인터넷 문화의 범람으로 종이 문화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비범한 바보들'은 우직스럽게도 종이 문화의 한 귀퉁이를 억척스럽게 부여잡고 있다. 책을 가까이 둔 독자들의 정독을 권한다. 최창중 / 청원 남이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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