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학 / 영동 황간고 교장
한국교육과정평가연구원이 최근 5년간의 '수능 성적 분석결과'를 공개한지 한달여가 지났다. 이번 공개는 일단 시·군별 통계였지만 향후 학교별 공개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 자료에 의하면 비평준화 지역은 물론 평준화 지역에서조차 지역과 학교간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나면서 학교현장이나 학부모의 관심이 비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발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곳이 경남과 전남의 모 군(郡)이었는데, 일단은 '군 단위에서도 이런 실적을 올리는구나' 하는 찬탄을 사기에 충분했다.

중국 황하 상류에는 용문(龍門)이라는 협곡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지만, 이곳은 여울이 아주 급해서 웬만한 대어(大魚)라도 여간해서 치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번 오르기만 하면 단번에 용으로 승화하기 때문에 '등용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난관을 돌파하여 약진하는 기회를 얻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이 말은 <후한서 이응전(李膺傳)>에, 태학의 청년 학생들이 정의파 관료의 영수 이응에게 학식을 인정받거나 인재로 추천되는 것을 가리킨 말로 쓰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입신출세의 첫걸음이라는 뜻에서 그렇게도 사용됐다.

그런데 황하처럼 대하(大河)도 아니요 급한 여울도 없는, 피라미 따위나 살고 있는 개천에서 용문 같은 건 구경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용을 꿈꾸는 어린 학생들을 도회지나 외국으로 몰려가게 하고 있다.

부족하지만,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20년 가까이 대학입시를 지도한 경험으로 '학력'이란, 선천적인 지력(知力), 건강이 담보된 의지, 그리고 공부 방법의 노하우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이 지력인데,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것을 향상시키기는 거의 무망하다는 게 나의 교단 경험적 소산이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한두 자녀 밖에 두지 않는 우리 세태에서 자녀를 용문에 올리고 싶은 열정은 사교육비 지출을 얼마든지 감내하겠다는 것 아닌가.

통계에 잡힌 사교육비가 19조원, 나라 전체 교육비의 절반에 가깝다는 보도가 매스컴을 때리는 터라,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입도 뻥긋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터에, 어느 진보 성향의 가수(歌手)는 "나쁜짓 많이 한 공교육은 사멸돼야 한다"는 독설을 늘어 놓기도 했다. 아무리 '역치(threshold value) 상승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쯤되면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교육 시장의 거물 손모 사장도 "교대생과 사대생에게 주로 주어지는 교원 선발체계부터 문제가 있다" 며 "누구든 잘 가르치기만 하면 학교 교단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그리고 학원 강사들의 주기적인 강의 평가에 관해 설명하고 공교육이 사교육 시스템의 훈수에 귀 기울일 것을 주문한다.

평가원의 이번 발표로 공교육 특히 고등학교가 어떻게 변신할 지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이제는 각자 생존을 위해서라도 뛰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현실적 여건을 무시한 교육 정책이나 방안은 오히려 공교육을 퇴행시켰고 그 때문에 우리 교육이 사교육의 그늘에 가려진 게 아닌가.

이를테면 위에 언급한 각광받는 경남과 전남의 두 군(郡)의 내면을 들여다 보건데, 그곳은 비록 시골이지만 비유컨대 '용문'을 설치하여 원근 각지의 인재들을 불러모은 곳 아니던가. 손 사장은 이렇게도 일침을 놓았다. "서울대 많이 보냈다고 자랑마라. 그것이 고입 '선발 효과' 의 결과이지 당신네 고등학교가 특별히 잘한 것이냐?"

일선 고등학교는 이제, 싫든 좋든, 대하(大河)든 개천이든, 어떻게든 '용문'을 만들어 사교육과의 생존 경쟁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전영학 / 영동 황간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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