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섭 〈논설위원〉
"불행한 과거가 사법부의 권위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적지 않은 손상을 줬음을 잘 알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8년 9월 26일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지 못했던 '불행한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흐른 지금 사법부는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논란으로 또다시 조직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14~19일 사이 전국의 일선 법원 26곳 중 15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판사회의가 열렸고, 대부분의 회의에서는 신 대법관의 행위를 '명백한 재판권 침해'로 규정했다.

판결로만 말해야 할 판사들이 재판정이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재판권 독립'을 부르짖으며, 대법관과 대법원장을 향해 쓴 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당사자인 신 대법관에게는 사실상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저간의 평판은 '매우 뛰어나고 소신이 있으며, 기존의 판례에 얽매이지 않고 치밀한 법리 해석에 따라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는 소신 판결을 많이 내리는 판사' 로 유명했다.

원칙과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로 주목 받았던 그는 법원장까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왔다. 대전지법 수석부장판사 시절 조직폭력배들에게는 가차없이 무거운 형량을 구형했지만 한총련 활동에 대해서는 파격적일 정도로 관용적인 판결을 내렸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5.18 재심에서는 무죄도 선고했다.

그런 그가 대법관 승진과정에서 3번이나 탈락한 이후 촛불집회 관련 사건들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로 일관하다가 형사단독 판사들이 이를 문제 삼는 바람에 지금 후배판사들의 집단적 반발사태에 직면했다.

그는 2009년 대법관이 된 후에도 접수된 96건의 촛불재판을 몰아주기로 일관했고, 그것도 모자라 직접 해당 판사에게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 '대법원장의 뜻'임을 내세워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지난 3월 16일 그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공식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대법원 윤리위원회는 진상조사단 발표와 달리 대법원장 경고 또는 주의 촉구 권고라는 '솜방망이 제재'를 가하자 소장 판사들의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동안 열린 전국의 판사회의는 신 대법관의 행동을 "명백한 재판 개입이자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 행위로 간주하고 그가 더 이상 대법관직을 수행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며 우회적인 표현을 통해 사퇴를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대법관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직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신 대법관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이는 사법부 조직 전체의 신뢰만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렇다고 탄핵 등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법관을 강제로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론은 이번 사태를 자초한 당사자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수순밖에 없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형사로 등장한 박중훈은 술좌석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야."

자문도 요청도 안했는데 판사가 판단한 일을 선배판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이건 선배판사로서 분명 할 짓이 아니었다. 그가 이미 거취결정의 시기를 놓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도 있다. 후배판사들이 이만큼 배려해주었으면 본인도 조직을 위해 깜냥껏 판단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정문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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