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학 / 영동 황간고 교장
사람을 비범인(非凡人)과 범인으로 구별하고, 역사상 위대한 공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비범인, 현존하는 질서에 복종하는 보수적인 사람을 범인이라고 정의하면서, 비범인에게는 세계사적인 역할을 담당할 특권을 줘야한다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에서 주인공은 주장한다.

범인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도덕률을 초월할 능력이 없고, 하는 일은 세계를 보존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일뿐인 반면 비범인은 인류의 진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도덕 기준을 과감히 파괴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자신을 범인으로 치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오래전이지만 '서울대의 나라' 의 저자 강모 교수는 "보통사람이 보통사람답게 사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엘리트가 자기의 특권만 누릴 뿐 책임을 방기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며 "그것은 직무유기 수준" 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의 비범인이라면 대체로 어떤 부류가 해당할까. 단정하기 어렵지만, 뭐니뭐니해도 내노라하는 전공 지식을 활용하여 사회 이곳저곳을 진단·평가하는, 강단에 계신 분들이 아닐까 한다.

최근 조선일보사와 영국의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공동 실시한 '2009년 아시아 대학 평가'가 보도된 뒤 강단은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이라고 한다. 국내 106개 대학을 포함, 아시아 11개국 463개 대학을 분석한 이번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카이스트와 서울대가 10위 안에 들었고 100위 안에는 17개 대학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평가는 교수의 '연구능력' 비중을 중심(60%)으로 했기 때문에 국적을 불문하고 하위 등수에 자리한 대부분 대학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연구에 덜 매진한다는 시사가 되고 말았다.

대학이든 초·중등학교든 이젠 평가를 피해갈 도리가 없어진 시대에 처해 있다.

도시건 시골이건, 학생을 가르치는 모든 학교가 엄격한 잣대를 평가 기준으로 적용해서 그 성취도를 공개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개별 학교들이 학부모나 학생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 부언하고 싶은 건, 이번 평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대부분의 우리나라 대학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시도할까 하는 기대감이다.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한 대학, 대학교수이다보니, 비범인이라는 명예를 안겨 드린다고 해도 논문 한편 제대로 쓰지 않는 교수, 전공과 관계도 없는 이벤트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교수, 지연·학연·혈연에 기대 행세하는 교수들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 고등학교는 시스템상 대학의 입시 정책에 완연 종속되어 있다. 대학이 난립되고 나서, 누구나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되고 보니, 그 여파가 고스란히 고등학교까지 미치는 것이다. 세칭 일류대학이라는 곳을 제외하면, 대학을 가기 위한 고등학생들의 긴장감이 사라졌다. 대학에 진학하는 목적조차 불분명한 학생도 많다.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대학 시절을 추억하는 것으로 그 비싼 등록금 기억을 상쇄시키는 범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중등교육에도 문제점은 산적해 있다. 강단에 계신 분들이 자유롭게 이것을 지적하고 평가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자주 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런 단상에 '너나 잘하세요'하는 코미디 언사를 날린다고 해도 할말이 없다.

다만 중등교육의 아픈 실상을 현실적이지도 못한 대안으로 자꾸 건드리기 전에 강단도 스스로 아파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중등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것 뿐이다.

전영학 / 영동 황간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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