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선 / 교육평론가
학교의 변화가 너무 늦다.

엘빈 토플러가 언급했다. 기업은 100마일로 달리는데, 학교는 10마일의 속도로 간다. 다른 차량들의 진로마저 방해한다. 노동조합 30마일, 관료조직 25마일보다도 훨씬 느리다. 그의 책 '부의 미래' 에서 학교가 변화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 내용이다. 이런 언급은 학생들, 혹은 교육내용을 말한 것일까?

아니다. 변화에 대한 교사들의 무감각을 지적한 것이다.

변화에 따라 학생들에 대한 지도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 변화를 읽어야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다. 학생을 이해할 수 있어야 바람직한 지도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변화에 둔감하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이런 식이다. 아직도 과거의 잣대로 21세기의 학생들을 재단하고 있다.

▶이미 변화된 시대적 환경

이런 상황이니, 제대로 된 지도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지금의 학생들은 사고방식부터가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환경상황도 크게 변했다.

권위적인 교육방식과 일방적 지시와 전달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아직도 이런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보호감호형(Custodial) 학교를 그리워한다.

월로워(Willower) 에이벨(Eidell) 호이(Hoy)에 의하면, 학교는 '보호감호형'과 '휴머니즘형' 학교로 구분된다.

전자는 학교를 엄격한 전체주의적 조직으로 인식한다. 교사권력이 매우 크며 의사전달의 흐름이 일방적, 하향적이다. 학생들은 교사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할 수없다. 지시한 그대로 따라야만 한다. 교사 역시 학생을 이해하려하지 않고 통제의 대상으로만 인식한다.

반면 후자는 다르다. 학교를 상호작용을 통해 배우는 교육공동체로 여긴다. 엄격한 통제대신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교사와 학생 간 쌍방향 의사소통을 중시하고 민주적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이렇듯 양자 간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우리 상황으로 정리하면, 전자는 권위주의 시대의 학교, 후자는 향후 지향해 가야 할 학교 모습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학교모습이 어떠해야 되는지는 자명하다. 후자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결론은 교사들이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제대로 된 학교모습을 갖출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교사들이 노력해야 될 이유다.

▶구체적 실천이 중요

첫째,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통은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시도다. 학생지도에 체벌과 같은 물리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둘째, 집단 이데올로기의 탈피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친 집단성이다. 심하게 말하면 집단만 있을 뿐 개개인은 존재치 않는다. 모든 것은 집단 이데올로기로 통한다. 이런 점에서 무게중심을 좀더 개인 쪽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집단과 개인 간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내면중심의 지도다. 아이들도 군중속의 고독을 경험한다.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상태다. 그런 만큼 학생들의 내면을 살피려는 교사들의 세심한 노력은 중요하다. 외적지향의 지도를 벗어나 내면지향의 지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넷째, 인권존중 교육으로 가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존중은 교육선진국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피교육자이기 때문에 쥐락펴락해도 좋다는 인식은 문제다. 부족하지만 학생들도 인격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한병선 /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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