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준 < 사회부 부국장 >
10년전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야인(野人)이었다. 이를테면 백의종군하는 입장이라고나 할까. 그는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특별한 당직도 맡고있지 않았다. 2000년 총선때 부산에서 허태열후보에게 고배를 마신후 의기소침해 있을 때 였던 것 같다.

그해 그는 민주당 상임고문이라는 자격으로 지금은 문닫은 청주관광호텔에서 충북지역 언론사 정치부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었다. 수행원도 없이 혼자 시간에 맞춰 간담회 자리에 나온 그는 함께 참석하기로 했던 안동선의원이 늦는 바람에 한참 동안 별말없이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왠지 그의 표정엔 원외(院外)의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후 10년간은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권력의 정점에 섯다가 한없이 추락했던 변화무쌍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엔 누구도 그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거나 낙화(落花)처럼 절벽밑으로 사라질것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드라마틱'했다.

노 전대통령의 서거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보도에 접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그를 지지했건 안했건 애도와 추모의 행렬이 이어졌다. 시중에 흰 국화꽃이 바닥날 정도다.

많은 국민들이 그를 추모하는 것은 왜일까. 그는 부인 권양숙여사가 한 기업인으로부터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아 미국에 있는 자녀들의 호화빌라를 사주거나 벤처기업을 설립하도록 했고 억대의 선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더구나 이같은 모든 혐의를 부인에게 전가해 '비겁한 남자'라는 오명(汚名)을 쓰기도 했다.

이같은 내용의 보도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그의 서거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에서 내려와 '정치적 약자'로 신분이 바뀐 그가 정치적 보복 또는 탄압받고 있다는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국민정서를 흔들어 놓았다. 그에게 온갖 수모와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주었다는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현 정권의 실정(失政)도 한몫하고 있다.

노 전대통령이 만약 죽음을 택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검찰은 여죄를 캐기위해 더 압박을 하고 많은 정치인들이 교도소 담장을 거닐고 있을지 모른다. 그 역시 실패한 대통령의 이미지가 고착됐을지 모른다. 결과로 놓고보면 외롭게 몸을 던진뒤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그 역시 '인간 노무현'을 새롭게 조명받는 대반전(大反轉)을 이룬셈이 됐다.

'죽은뒤 다시 살아난' 그를 보면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미 '죽은 권력'을 지나칠만큼 파헤치는 '살아있는 권력'의 냉혹함도 그렇거니와 사안의 본질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전직 대통령을 끊임없이 모욕하고 수치심을 자극하는 '하이에나 언론'도 문제다.

하지만 노 전대통령이 서거하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부는 '국민장'으로 정중하게 치러야 한다며 유족과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정권의 실세들은 경쟁적으로 조문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힘께나 있다는 언론은 어떤가. 전직 대통령의 비리를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속은 하지 않더라도 평생 죄의식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신문들을 펼치면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파도를 친다. 현기증이 날 정도다. '고인(故人)에 대한 예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민심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진작 그들이 민심과 국가의 자존심, 그리고 경제위기속에 나라의 운명을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옳다고 생각한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죽은뒤 다시 살아난 '인간 노무현'은 정말 많은것을 생각하게 한다.

박상준 < 사회부 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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