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의영 / 前 충청대교수
생전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서도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았던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향년 57세의 나이로 지난 5월 9일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였던 故 장 교수는 생후 1년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에 의지하면서 살 던 중 2001년부터 세 차례의 암 선고를 받고 병마와 싸웠다.

하지만 매우 힘든 조건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항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는 2005년 3월부터 다시 대학 강당에 돌아와 강의도 하고 집필활동에 전념해 왔다.

지면을 통해 본 그는 소녀 같은 단발머리에 웃음을 잃지 앓던 밝은 모습이었으며,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의 글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던 그가 끝내 저 세상으로 가버리고 나니 인간적 향기가 넘치는 그의 글은 물론 그의 남다른 삶의 면모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슬픔과 허탈에 빠지고 말았다.

지난 2004년 2월14일자 한 중앙 일간지의 칼럼에서 제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지금 네가 들어가는 그 세상은 책 속에서 보았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곳인지도 모른다.

진리보다는 허위가, 선보다는 악이, 정의보다는 불의가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이리저리 줄 바꿔서는 기회주의, 호시탐탐 일확천금 찾아 헤매는 한탕주의, 두 손 놓고 자포자기하는 패배주의에 아직은 이상을 꿈꾸는 너는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제자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그의 제자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2007년 6월 8일자 또 다른 중앙일간지의 칼럼에서는 '흑인여성으로 처음 미국의 스미스칼리지의 총장이 된 루스 시먼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성공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는 '어려운 것(difficult)' 과 '불가능한 것(impossible)'을 구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려워도 가능해 보이는 일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도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계획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하면 된다'고 아무리 아우성쳐도 안 되는 일은 안 된다. 다만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어려워도 그 일에 집중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또 장애인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스스로 일어서라'고 가르치면서 장애우의 정당한 권익을 찾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고 한다.

2001년 하버드대 방문교수 시절, 7층짜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7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했었는데 아파트 관리회사를 상대로 싸워 사과를 받고 보상을 얻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몸이 불편해 주류를 벗어났기에 장애인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희망을 열어주고 권익을 지켜주려 애쓰는 한편, 교육과 문학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고 치열한 삶을 영위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깊은 통찰력으로 평범한 일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삶의 태도, 진솔한 삶의 향기와 애정이 묻어나는 비타민 같은 글들, 치열한 고통의 나날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잘 이겨내려 했던 그 강인함으로 기적같이 살아온 故 장영희 교수! 그는 진정으로 이 시대의 값진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시간, '두 다리가 불편했기에 오히려 나는 책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그의 강인한 정신을 다시한번 기려본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언제나 희망을 노래하고 아픔과 고통의 순간에도 언제나 미소 지으며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녀의 명복을 삼가 빌어본다.

곽의영 / 前 충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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