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희생자 위령제에 남편사진 거는 노양우 할머니

   
 
 
 

노양우(83·사진)할머니는 한국전쟁기에 국가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청주청원 유족회' 유족이다.

할머니의 친정은 청원군 남일면 장암동 연꽃 피는 방죽마을로 왜정 때 남일국민학교를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하자 얼마 후 정신대가 나와, 간신히 위기를 면하고 부랴부랴 서둘러 해방되던 해의 음력 4월 보름에 한유동씨와 결혼했다.

할머니의 나이는 19살 이었고, 남편은 18살로 청주고를 졸업했다.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남편은 1949년 청주형무소에 1년간 수감되었지만 할머니는 이유조차 몰랐다.

"남편과는 햇수로 5년, 만3년을 살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른다"며 "매달 면회를 갔지만, 안부 외에 이야기 나눌 겨를이 없었다. 남편이 책을 넣어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그 책을 넣어준 것만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남편이 출감하자 보도연맹에 들어야 공군대위였던 시아주버님이 안전하다는 아버지의 강권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전쟁이 나고, 사람들이 몰려와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으로 남편을 데려갔다.

23살 남편이 처형당할 때 아들은 세 살, 딸은 임신 3개월이었다. 석방 후 4개월 만에 난리가 났으니, 임신한 몸으로 시신을 수습했다. "살이 다 붓고, 몰라보겠더라고. 남편운동화가 나와서 보니까, 쓰봉에 시계주머니 달아 준 것이 내가 만든 거여."라고 말하며 할머니 눈이 붉어진다.

바느질삯으로 키워 아들은 공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대학원을 나왔고, 딸은 청주교육대학을 졸업했다.

"나 무지하게 힘들었어. 딸래미 변또(도시락) 한 번도 못 싸줘 봤어. 어느 때는 얘들 저녁도 못 먹였어" 끝까지 참아보려고 했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숨어 사는 거 아니여? 빨갱이다 뭐다 아직도 몸서리가 쳐져. 뒤로는 얼마나 수근 대는지. 서로 왕래도 잘 안하더라고. 지 아빠 얼굴도 모르는 아들을 취직도 못하게 하는데." 아들이 신원조회로 취직을 못하고 느닷없이 내려왔을 때는 가슴이 무너졌다.

아들은 과로로 나이 50인, 13년 전 사망했다.

유족회는 오는 17일 오후 2시 중앙공원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청주청원 합동위령제'를 한다.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될 예정이다. 남편의 사진을 벽에서 떼어 건네며, 할머니가 운다.

故한유동씨가 눈물로 한세월을 살아온 아내에게 찾아와 "여보, 그동안 고생 많았소." 손 한번 잡아주면 좋겠다.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영혼도 아프지만, 남은사람의 생애도 아리다. / 김순애 시민기자 dnfckd@hanmail.net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