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위성지구국 사람들
1초실수땐 신문 1년치 정보량분실
눈오면 날밤세워 안테나 제설 작업
태풍불어도 안테나 다칠까 조마조마

보은서 상주 방향으로 25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경북 접경에 이르러 한국통신 보은 위성지구국(국장 염규식·49)이 나온다.
초대형 위성 접시 안테나 4개와 기암괴석의 구병산(해발 876m)이 인공과 자연의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또 그곳의 직원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4과 56명의 직원들이 2백50톤 규모의 초대형 위성 안테나를 사고없이 운영하고, 지구국 안테나와 국제위성인 인텔세트가 0.1도의 각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승부를 걸고 있다.
왜 그런지를 알려면 이곳 직원들의 1년 사계와 하루 24시간을 살펴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을 준다.
현재 보은 위성지구국은 3만6천여평의 부지위에 총 4개의 초대형 위성 안테나를 보유하고 있다.

2개의 안테나는 적도 3만6천㎞ 상공의 태평양 위성체(각도 동경 174, 183도)와, 나머지 2개는 인도양 상공의 인텔세트 국제 위성체(각도 62, 64도)와 송·수신을 하고 있다.
이곳을 통해 ▶TV 위성중계 ▶국제전화 ▶각종 고속 데이터 등의 「국가자산」 자료들이 분초를 다투며 들어오고 나가고 있다.

88 서울 올림픽, 86 서울 아시산 게임은 물론 이번 시드니 올림픽의 각종 동화상과 데이터도 이곳을 통해 송수신이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정보의 하늘 창」 역할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경미하고도 사소한 실수는 곧바로 「국가적인 실수」로 연결된다.

직원들은 태양간섭 현상, 위성 일식현상, 눈이 올 때나 태풍이 불 때면 고양이가 털을 세우는듯한 긴장을 하게 된다.
태양간섭과 위성일식 현상은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어 아직 특별한 대책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눈이 올 때가 태풍이 불 때 송·수신 사고가 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흔히 말하는 인재(人災)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매일 3교대로 철야 근무를 하는데 이날 만큼은 전원 근무를 해야 합니다. 눈이 직경 30m(면적으로는 2백50평) 안팎의 안테나에 쌓이면 통신품질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어떤 식으로든 눈의 제거해야 합니다. 워낙 눈이 많이 쌓이면 소방차를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1초 실수를 하면 신문 1년치 분량의 정보량이 순식간에 날아 갑니다.』

직원들은 태풍에 대해서도 알르레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바람에의한 안테나 파손을 막기위해 비상 수단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속 50m 정도의 태풍이 불면 2백50톤 무게의 안테나를 수평이 아닌 수직 방향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테나가 태풍의 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만 매년 태풍의 강도가 세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평상시라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보은 지국구 안테나와 적도상공 국제위성체 간의 각도를 항상 입력해 놓은 각도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각도가 0.1도만 벗어나도 송·수신이 두절되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0.1도의 차이가 3만6천㎞ 지점에 이르면 수십㎞ 차이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안테나가 상하_좌우로 이를 계속 추적합니다만 역시 긴장을 풀 수는 없습니다』

보은 위성지구국 직원들은 이런 고양이가 털을 세우는듯한 긴장을 이기고 15년째 무재해(85년 7월-2000년 7월)를 기록, 한국 산업안전공단으로부터 「무재해 10배 달성상」을 받았다.

산업안전공단 상은 「산간에 장기간 동절기라는 극도의 어려운 근무 여건에도 불구, 15년 무재해를 달성했다」며 「이는 충북지역 평균 무재해율을 10배나 초과하는 기록」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보은 위성지국국 직원들은 「사람들」을 더 그리워 하고 있다.
워낙 후미진 곳인데다 보안이 요구되는 시설에 근무하기 때문이다.

『야간근무후 출출해진 배를 채우려면 컵라면이 전부입니다. 삼겹살로 회식을 하려 해도 30리 길을 돌아 보은읍내로 나가야 합니다. 이는 그래도 약과로 한번 인사가 나면 해저 케이블국이 있는 제주, 태안, 부산, 거제도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전국 초중고 학생들이 이곳으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오는 때가 가장 즐겁다.
매일 하늘만 보고 대화하던 것을 이날 만큼은 땅을 보고도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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