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우 / 충북도 교육위원
"공부 잘하게 해 주는 약 어디 없을까?"

공부에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 치고 이런 엉뚱한 기대 한번쯤 가져보지 않은 이가 있으랴. 기대와 수요가 이쯤 되면, 실제로 누군가 그런 약을 개발해 냈을 법도 하고, 엉터리 처방으로 눈속임하는 사기꾼도 나올 만 하겠다.

동의보감에도, 하루 천 마디 글귀를 외게 한다는 '총명탕(聰明湯)'과 1만권의 책을 기억시킨다는 '장원환(壯元丸)'처방이 나오고, 주자(朱子)이름을 딴 '주자독서환'이나 공자(孔子)이름을 빌린 '공자대성침중방'도 있다고 한다.

'총명탕'은 눈과 귀를 밝혀준다고 붙인 이름인데,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 하여 요즘도 찾는 수험생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한방약들 외에, 한때 고시생이나 중고생들에게 '공부 잘하게 하는 약'으로 나돌던 약이 '마약'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 일도 있다.

"공부 잘하는 약, 알고 보니 마약"이라는 보도물(2007년10월 KBS '추적60분')에 따르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치료제인 메칠페니데이트란 약을 서울·경기 중고생 74%가 복용해 왔었다는 것이다. 뇌손상이나 ADHD 치료제로 스위스에서 개발된 이 약은 서울강남 학원가에서 시작해 점차 번져갔다고 한다.

점수 올리기에 혈안이 된 일부 학원강사가 "미국에선 영양제로 먹기도 한다"며 권하는가 하면, '학습클리닉'을 표방한 일부 병의원들은 잠 쫓는 약을 찾기만 해도 이 약을 처방하고, 약국들에선 그런 곳을 알선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아들에겐 구토 등의 부작용이 심각해 학습관련성은 검증조차 어렵다고 한다. 이를 상용할 경우 뇌손상까지 유발해, 우리나라와 미국 등 150여 국가가 코카인과 같은 급의 마약으로 분류해 놓기도 한 약이다.

그런데 이 약 얘기를 오늘 새삼 꺼낸 것은, 이와 유사한 현상이 요즘 우리 교육계에 급속히 번지고 있어서이다.

더욱 경악할 일은 교육당국이 앞장서 그것을 퍼뜨린다는 점인데, 바로 '일제고사'와 그에 대비한 '방학 중 보충수업'을 두고 하는 얘기다.

'학력저하'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일제고사는, 영국과 미국에서 촉발된 '교육시장화' 정책의 '변종플루'다. 영·미의 교육위기는 탈학교사회와 양극화가 낳은 학력저하가 핵심이어서, 그 대책으로 나온 것이 학교의 기업화와 교육의 상품화였다. 평가를 앞세운 성과주의도 그 하나다. 하지만 시행결과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심각해 그 나라들도 점차 정책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위기는 그와 다르다. 학력저하 아닌 '학습흥미저하'가 심각한 문제다. 그럼에도 정부는 영·미 정책을 그대로 복사해 와 시행착오까지 뒤따르겠다는 듯이 맹목적이다.

초등시절은 건강이나 학습 모두 기초를 다지는 때이고 약이 필요하다면 보약을 쓸 시기다. 더구나 방학은 휴식과 독서와 체험활동으로 재충전할 때여서, 그것들을 잘 챙기는 것이 차라리 보약이고 총명탕이다.

그런데 일제고사라는 변종플루가 창궐하니, 초등생들의 방학까지 빼앗는 보충수업이 '학력신장의 묘방'이라고 내세워지고 있다. 방학 내내 문제풀이에 답안작성요령까지 연습시키면, 10월 일제고사에선 전국 꼴찌는 면할 수 있을까. 글쎄다.

혹 '반짝 효과'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마약효과이지 보약효과가 아니다. 그런 환각을 위한 처방을 교육이라 부를 수도 없다. 고작해야 "뭔가는 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면피성 '아동학대' 아닌가.

이로써 아이들의 심신은 더욱 피폐해지고, 학습흥미는 커녕 공부에 질려 버리는 아이들이 늘어갈 것이다.

창의성·탐구력·자기주도학습력 같은 것들은 교사들의 입술에만 발린 구두선에 머물고, 교육은 바닥없는 수렁에 빠질 것이다. 정말 어디까지 가 보아야 할까.

김병우 / 충북도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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