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하루를 보내고 마감하는 시간쯤의 해는 더욱더 붉어진다. 어느 날엔 하루의 빛을 모두 모아 더 붉어진 해를 쫓아 무작정 운전대를 잡고 해가 가는 방향으로 무작정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붉던 해는 어느 사이로 숨었는지 형체 없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허망한지 모른다. 해가 스멀스멀 어둠이 하늘을 덮던 그 시간엔 모두를 잃어버린 듯 두렵기만 하다.

요즈음 남편이 기가 죽어 있다. 말수가 없던 이가 더욱 더 말이 없어졌고 힘이 없어 보인다. 옆에서 바라보는 나도 힘들다. 이해는 하면서 빨리 툭툭 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남편을 위로 하기위해 무작정 길을 나섰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우리 지금행복하지 않아요? 하고 물으니 말이 없다. 다시 말을 붙인다. "아이들 잘 자랐지요. 다들 어렵다고 하는 공무원 우리 큰 애 됐지요, 작은 애 대한민국에서 제일로 처 주는 대학 다니지요 당신이나 나 우리 아이들 건강 하지요 이만 하면 행복 한 거 아닌가요." 내가 생각하기엔 그 이상은 욕심 같은데…, 당신 승진 못하면 어때요 그래도 남편은 말이 없다. 아마도 마음이 많이 상했나보다. 일터인 그곳에서 젊음과 열정을 받쳤는데 실망이 큰가보다.

가정보다는 직장이 먼저인 사람이다. 나는 그것 때문에 늘 불만이 많았다. 남들처럼 직장일은 대충대충 하고 가족을 위해 더 헌신 하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남편은 이번이 승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일한만큼 회시에서 인정받을 거라는 믿음이 컸으므로 마음이 상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어떻게든 마음을 다스리고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힘을 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리라.

수덕사 턱밑에 자리 잡고 있는 '그때그집'이라는 조용하고 아담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방을 얻었다. 비수기라 그런지 일곱 개뿐인 객실이 모두 비어 있고 우리만이 손님으로 들었다. 우리는 새벽 예불시간에 맞춰 알람을 해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간간히 뒤척이는 것을 보니 잠을 못 이루는 것 같다. 남편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본다.

아직 밤하늘은 꿈을 꾸는 시간. 랜턴을 준비하고 산길을 올랐다. 여관에서 10여분 걸리는 절까지 가는 길은 어둠이 앞을 막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괜찮다, 괜찮다고 등을 두드린다. 일주문을 지나서 절 마당에 올라 내려다보니 저 아래 사람들이 사는 마을 에는 가로등이 서로를 위로하며 별빛처럼 빛난다.

새벽3시가 되자 삼라만상을 깨우는 범종소리로 시작해 법고, 목어, 운판이 울리고 나서야 법당에서 예불이 진행되었다. 절에 가더라도 법당엔 들어오지 않고 늘 밖에서만 맴돌던 남편이 한참 절을 하고 있는데 언제 들어 왔는지 부처님 앞에 합장을 하고 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서 우리는 말없이 손을 잡았다. 올라오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껏 올라오기만 한 삶이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 인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내려가는 길은 가벼우리라. 어느새 날은 밝았고 서늘한 새벽바람은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 시인

◇약력

2006년 '문예연구' 겨울호 시등단,

중앙도서관 영양사로 근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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