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학 영동 황간고 교장

대통령께서 '임기 말쯤 대학 입시제도가 거의 100% 입학사정관제 또는 농어촌 지역균형선발제로 바뀌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자 고교와 그 학부모가 혼란에 빠졌고, 교과부 차관은 '속도보다 중요성을 강조한 발언'이라며 수위 조절에 나섰다.

3년째를 맞는 입학 사정관제는 올해부터 전국 49개 대학에서 2만600여 명을 선발하게 됨으로써 본격적인 입시제도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각 대학들은 사정관을 임명했고 이들은 지금 입시생을 사정(査定)하기 위한 계책에 골몰하고 있다.

어느 대학은 각 분야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를 사정관으로 모셔왔음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대학들의 사정관 면면은 전직(前職), 교사, 유명학원 강사, 기업 인사팀장 등이거나, 대학 관련인사들로서 그 대학 나름의 적절한 직위를 부여했을지는 몰라도 담당교수의 지휘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입학 사정관제에 자신감을 보이는 일부 대학 총장들은 '사교육으로 화장한 학생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며,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도 교과 성적은 여전히 중요하고,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지도 볼 것이며, 그리고 이후에 학생들의 잠재력과 문제해결능력 등을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교육 시장은 이미 사정관제를 목표로 한 전담 프로그램 개설에 나섰고, 강남 학원 불패 신화가 상징하듯 고액 과외비 시비가 붙기 시작했다.

사정관제가 사교육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고, 사교육의 변화무쌍한 생존 전략을 사정관들이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만연한 까닭도 그 때문이다.

사정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예비학생과의 상담과 컨설팅이다. 학부모와 학생이 찾아오면 언제든지 무료로 상담해주겠다며 대학을 믿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 본고사, 학력고사 시절을 막론하고 대학의 입시 부정이 도마 위에 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만약 일부 사정관이 탈선할 경우를 대비한 제도적 장치라는 게 올림픽 체조 채점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학의 입장으로서는 학생 선발의 자유를 일부나마 획득하게 됨으로써 미상불 감청(敢請) 고소원(固所願)이 현실화 되는 양상이지만, 이제 문제는 명약관화해 졌다. 사교육 시장과 사정관들의 건곤일척 한 판 승부가 우리 교육계에서 오는 9월부터 전개될 테니까.

사정관은, 몇 년 전 미국 하버드대 입시에서 SAT(한국의 수능에 해당) 만점을 받고 떨어진 학생이 이의를 제기하자, 대학측은 "우리가 그렇게 결정했다"고만 답변했고 그 답변이 사회적으로 인정됐다는 것을 아주 쉽게 말하겠지만, 선진국 제도를 뒤쫓다가 거듭 낭패를 보았던 기억은 어떻게 할까.

다이이몬드를 찾는 게 아니라 그 원석(原石)을 찾고자 함이라는데, 우리 현실에서 잡석(雜石)을 원석이라고 우기는 것도 용인해 달라는 말인가.

대학 선택이 미래를 좌우한다는 집념이 팽배한 우리 사회 풍토에서 교과실력, 창의력, 지도력, 인성 그리고 잠재력까지 충분한데도 혹 부모의 영향력 미달로 입학 사정을 통과하지 못하는 학생이 정말 없을 것인가.

평생 의심만 하고 살아왔느냐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과거 입시 부정과 관련된 사회적 물의를 심심치 않게 접해본 우리 교육 풍토 아닌가.

자칫 일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는 건 아닌지. 그리고, 어느 제도가 됐든 입시는 어차피 경쟁인데, 일선 고교에서 어떻게 사정관의 입맛에 맞는 아이들을 길러내야 할지, 깊은 고뇌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