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원 / 전 청주교육장
복날 삼계탕 집에서 복달임을 하느라 닭의 열기로 땀을 빼는데, 어떤 분이 자기 손자한테 배웠다며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얘기가 들려왔다.

장마 비가 그친 뒤 사람들이 냇가로 물 구경을 나갔다. 흙탕물이 휩쓸고 간 둔치엔 작은 웅덩이가 여러 개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웅덩이마다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있었다.

미꾸라지며 붕어, 송사리와 피라미 그리고 모래무지와 꼬리달린 개구리도 같이 놀고 있었다. 물이 빠지면서 큰물로 돌아가지 못하고 웅덩이에 갇힌 것도 모른 채 놀고 있는 것이다.

지나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는 물고기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한다. 어떤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맹꽁이가 배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울어대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모두 다 즐겁고 신기한 표정들을 지으며 떠날 줄을 모른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서야 구경꾼들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유치원에 다닐만한 손자의 손을 잡고 늦게 산책 나온 할아버지도 구경을 한다. 물고기를 구경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고무신발을 벗어들고 웅덩이로 들어간다.

할아버지는 신발로 웅덩이의 물을 퍼낸다. 물이 줄어들자 진흙탕 속의 물고기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한다. 할아버지는 고기를 잡아 신발에다 담는다. 손자도 즐거워하며 고기잡이에 신이 났다.

고기잡이를 마친 할아버지는 냇물에서 손발을 씻은 뒤 물고기가 든 신발을 들고 일어서서는 흐뭇한 표정으로 "삼만원 짜리 한 냄비는 되겠는데…" 하면서 만면에 희색을 짓는다.

무슨 얘긴 줄 모르는 손자가 의아해 하며 "할아버지, 그걸 삼만 원에 파신다고요?" 하고 묻는다. "팔기는? 집에 가서 할아버지 좋아하는 맛있는 생선 매운탕을 끓여 먹어야지" 라고 대답하며 맨발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손자가 이상한 제안을 한다.

"할아버지, 그 물고기 그냥 놔주면 안돼요? 아까 보니까 두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려 달라고 우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물고기는 살려준 사람한테 은혜도 갚는대요. 그냥 살려주세요, 네?"

손자의 생명 존중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는지 할아버지는 "그럴까?" 하면서 다시 냇가로 돌아가 신발 속의 물고기를 물속으로 돌려보낸다. 새물을 만난 고기들은 인사도 없이 어두운 물속의 어딘가로 금세 사라진다. 손자는 환호성과 함께 손뼉을 치면서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이다. 발걸음도 가벼워 보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할아버지는 손자를 깨워 세숫대야를 들고 어제 저녁에 나갔던 냇가의 다른 웅덩이가 있는 곳으로 가본다. 웅덩이에는 물이 거의 다 잦아들고 있었다. 고기들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햇볕이라도 나면 모두 다 말라 죽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웅덩이마다 찾아다니며 고기를 잡아 세숫대야에 담는다. 벌써 숨을 거둔 것도 있다. 냇물에 놓아주자 맑은 물을 마신 고기들은 생기를 얻어 정신을 차리더니 다른 고기떼들과 어울려 즐거운 여행을 출발한다. "할아버지,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생명은 하나밖에 없대요. 그런데 그 생명을 한번 잃어버리면 영원히 찾을 수가 없어서 소중히 여겨야 된다고 그러셨어요. 오늘 아침에 죽어가는 물고기의 목숨을 살려 준 것은 정말 잘 한 것이지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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