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범덕 / 미래과학연구원 원장
모두가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휴가철입니다.

이번 달 과학동아를 읽어보니, 최첨단 캠핑장비가 소개되고 있더군요. 그것을 보며 오래전, 아내와 단둘이 떠났던 휴가생각이 나서 잠시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80년도 초반이던 그 시절엔, 애도 없던 때라 저희 부부는, 젊음의 낭만을 만끽하고자 텐트여행을 결정하고, 행선지는 고향 충북을 한번 일주하자고 했었더랍니다. 그래서 아는 친구들에게 텐트를 빌리고, 코펠과 버너, 그리고 먹을거리 등, 나름대로 알차게 준비한 배낭을 메고 떠났지요.

5박6일의 일정도 알차게 잡아서, 단양 도락산과 사인암, 수안보 송계계곡, 청천 화양동, 그리고 보은 속리산을 다녀오는 것으로 했습니다. 솔직히 캠핑여행은, 고작 학교 때 친구들 따라 한두 번 다닌 것이 전부였었기에, 혼자서 텐트치고 하는 것에 약간 겁이 난 것도 사실이지만 체면상, 아내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텐트를 치고 자면서, 속리산까지 잘 왔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추억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그 때 제가 빌린 텐트가 4~5인용인데다가 폴대는 스틸이라, 여간 무거운 게 아니었습니다. 버스타고 다니면서 좀 무겁다고는 느꼈었지만, 그 땐 젊음이 있었고, 또 사나이 체면에 꿋꿋하게 참았는데, 그만 속리산을 오르면서 모든 게 망가져버렸지요.

뒤쪽 화북에서 올라가기 시작했던 속리산행에서 도중에 비를 만난 것입니다.

처음엔 부슬 부슬 내려 괜찮을 줄 알았더니, 잠시 후엔 줄기차게 내리는 통에, 흠뻑 젖어 둘러맨 배낭이 보통 무거운 게 아니었습니다. 두 시간 예상한 것이,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문장대 정상에 갈 수 있었지만, 체력이 바닥이 난 저는 도저히 내려올 수가 없어서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는 거기에 휴게소가 있었지요.

별 말은 안했지만 옆에서 계속 바라보는 아내의 눈초리엔 안타까움과 애처로움, 그리고 약간의 한심함도 섞여 있는 듯 보여, 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과학동아에 소개된 텐트를 보니, 과학의 변화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모든 소재가 첨단소재였습니다. 폴리에스테르(polyester)라는 합성고분자물질로 이루어져, 천이 15D라고 하는데, 이 D라고 하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D는 데니어(Denier)의 약자로, 9,000m의 섬유나 실의 중량을 gram으로 나타낸, 밀도의 단위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9,000m의 실 무게가 겨우 15g이라니, 15D라고 소개되는 요즘 텐트가 얼마나 가볍다는 말입니까?

스틸로 된 옛날의 폴대도, 요즘은 FRP나 두랄루민을 소재로 바뀌어, 가볍고 단단한 합성물질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FRP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개발하였는데, 0.1mm정도로 가늘게 만든 유리섬유(fiber glass)에, 에폭시와 비닐에스테르,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열강화성 플라스틱을 합쳐 가공한,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iber glass Reinforced Plastics)'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알루미늄보다 가벼우면서도 철보다 강한 재질이 개발된 것이지요.

또 두랄루민은 다 아시겠지만, 비행기동체에 사용하는 가벼우면서도 아주 단단한 물질로, 알루미늄에 구리와 마그네슘을 혼합하여 만든다고 합니다.

휴가철에 접하는 간단한 텐트소재에서도 첨단과학의 결정체가 보편화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처럼, 첨단과학은 앞으로도 우리 생활 곳곳에서 함께 할 것이고, 실용적이고 더 좋은 제품들이 계속 개발되어, 아내 앞에서 사나이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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