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감독 「화양연화」청주 개봉

세상엔 부질없는 일이 적지 않지만, 시놉시스를 꼼꼼히 읽거나 시사회평을 챙겨 읽으며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미리 상상하는 것 또한 대표적으로 부질없는 일에 속한다. 그의 영화는 그런 것들이었다.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 마치 한지(韓紙)와 같은 정서상태에서 그저 영화와 무턱대고 만날 것, 그리곤 그 특유의 색채와 향기와 리듬을 온전히 흡수할 것.

그렇게 만나서 오래오래 가슴에 간직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의 영화 「화양연화」가 개봉된다.(청주 신씨네마1관)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고등기술위원회상을 수상한 뒤 지난 14일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영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한국에 온 톱스타 장만옥과 양조위의 존재감으로 요 며칠새 영화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바로 그 영화가 청주관객들을 찾는 것.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때(In The Mood for Love)」라는 뜻의 「화양연화」는 왕가위 감독이 언제나 주시하는 바로 그때, 1962년도를 배경으로 어떤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전해준다.
감독의 영원한 두 페르소나 장만옥과 양조위가 분하는 리첸과 차우는 이웃지간이면서 각각 남편과 아내를 서로에게 빼앗긴 악연. 하지만 비좁은 복도를 사이에 둔 만남이 거듭되면서 서로를 위로하던 둘은 서로의 그림자에 점점 젖어간다. 그리고는 4년 뒤의 만남….

언제나 비껴가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시선을 포착했던 왕가위의 카메라는 이번에도 둘의 주저감 그득한 마음의 흔적을 좇는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가 특유의 현란한 기교를 자제하면서도 여전한 슬픔과 허무의 정서를 담아내고 마이클 칼라소의 연주곡과 냇 킹 콜의 육성이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을 선사한다.

스크린에서 벌써 몇번쯤은 만났을 법하지만 정작 인연은 없었다는 장만옥과 양조위가 내공 깊은 연기의 앙상블을 선보인다. 특히 리첸의 심경과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상징하는 등 복합적 기능을 담당한다는 수십벌의 의상을 갈아입는 장만옥이 치명적일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덧붙여 하나 더 지적하자면_이건 좀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_청주의 영화팬, 아니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시네필(cinephile·영화애호가)」이라면 올해는 좀 특별한 해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상반기 중 홍상수 감독의 세번째 작품(「오!수정」)을 개봉관에서 만나게 되더니 하반기에는 드디어 왕가위감독의 「화양연화」 마저 개봉관에서, 서울 등 대도시와 동시에 볼수있게 된 것이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라는 시네필들의 탄성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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