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균 괴산군의회 의장

청명한 하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따가운 햇살, 황금 들녘.

어느새 청량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완연한 가을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이렇게 가을은 풍요로움으로 다가온다. 부지런히 달려온 시간을 뒤로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독서의 계절을 맞아 곳곳에서 다양한 독서 행사가 봇물처럼 이어지고 있다.

괴산에는 일명 억만재(億萬齋)라고 하는 취묵당(醉墨堂)이 있다. 충민사옆 괴강 언덕에 올라 앉아 있는 취묵당은 조선 중기의 독서왕 김득신이 1662년 세운 독서재로 지난해 9월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 61호로 지정됐고, 올해 보수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단장돼 모습을 나타냈다.

현재 취묵당에 걸려 있는 독수기(讀數記)에 보면 김득신이 평생 1만번 이상 읽은 글 36편의 목록이 가득 적혀 있다.여기에는 김득신이 사기(史記) 백이전(伯夷傳)을 무려 1억1만3천 번이나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억은 십만을 뜻함)

김득신 하면 조선 후기 김홍도와 함께 활동했던 풍속화가를 떠올리겠지만, 그에 앞서 또 한 명의 김득신이 있었다.바로 괴산의 인물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다.

그는 진주대첩의 영웅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손자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힌다. 그에 대해서는 책읽기와 관련된 일화가 적잖이 전하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김득신이 혼례를 치르던 날의 이야기다.

김득신이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장모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신방에 있는 책을 모두 치웠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밤 신랑은 신부를 제쳐두고 방을 뒤지며 책을 찾았다. 경대 밑에서 김득신이 발견한 것은 책력(冊曆). 밤새도록 읽고 또 읽은 김득신은 날이 새자 "무슨 책이 이렇게 심심하냐고 말했다"고 한다.

김득신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40여년간 꾸준히 읽고 시를 공부한 끝에 말년에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노둔한 사람도 없겠지마는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정약용은 김득신을 "문자가 만들어진 이래 지구상에서 독서에 열심인 분 가운데 김득신을 으뜸으로 쳐야 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우리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直指)를 가진 출판강국이요, 안중근 의사의 말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유구한 지적 전통을 지닌 민족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면서도 우리 한국인들은 한달에 평균 1권 정도에 불과한 독서량을 보이고 있다는 부끄러운 통계가 있다. 또한 한창 배움의 나이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첨단 전자기기에 빠져 점점 생각이 짧아진다고 한다.

독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책을 통해 진정한 내면의 성숙과 깊은 사유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책읽기는 각 분야 전문가를 언제든지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 대화의 공간이다. 그렇기때문에 사람은 꾸준한 독서를 하지 않으면 결국 뒤쳐지게 마련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독서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 가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가족과 함께 하는, 이웃 주민과 함께 하는 책읽기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독서왕 김득신의 고장인 충북 괴산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밤샘 독서대회' '독서왕 김득신 선발대회'를 마련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