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헌 충북도립대학 총장

일본은 지난 8월 30일 중의원 선거를 통해 자민당 집권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민주당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데에는 군림 하는듯한 자민당의 집권에 국민들이 염증을 느낀데다가 계속된 경제정책 실패로 그 동안의 지지를 거두어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건설적인 대안으로 집권능력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면서 피부에 와 닿는 선거 공약을 제시해 '일단 갈고 보자'는 쪽으로 민심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일본 민주당의 친서민 정책은 ▶중학교 졸업 때 까지 아동 수당 월 2만6천엔 지급 ▶공립고 수업료 무료화와 사립고 등록금 보조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농어민 소득 보상제 실시 ▶최저임금 인상 및 제조업에 대한 파견근로 원칙적 금지 ▶중소기업 법인세 인하 등이다.

민주당 하도야마 대표는 선거 기간 중 미국 주도 세계화와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고 해결책으로 '우애의 정신'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공동체 회복, 복지·의료체계 정비, 양질의 교육·보육서비스 제공, 빈부 격차 해소 등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도 일본의 정칟경제적 변화 가능성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향후 일본 정부의 과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고령화 현상과 정부부채 증가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데 있다고 논평하고 있다.

일본이 희망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지역연대형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데 대해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로 아사히신문은 기획사설을 통해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에 체계적으로 대비해 나아가기 위하여 분권형 행정체제구축과 복지재정의 확충을 주창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보험재정을 충실히 하여 의료의 평등을 지켜내고 ▶개호(돌봄) 종사자를 보호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토록 하며 ▶파트도 파견도 후생연금에 가입 할 수 있도록 연금제도를 개혁하고 ▶취직 빙하기의 젊은 세대에게 사회가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어린이를 위한 특정 재원을 마련해 보육서비스를 더욱 강화하는 등 구체적 정책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민주당 공약이나 아사히신문이 제시한 정책 모두 복지 우선의 정책이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관건은 재원조달 가능성이다. 자민당은 민주당의 공약이 구체성이 없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민주당은 공공사업 계획을 고치거나 특별회계의 잉여금을 활용한다던지 인건비 절감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반박해 왔다.

실제로 일본의 국가 재정은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 연간 세수에 비해 국가 채무가 엄청나게 많고 매년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부채의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 신규 채무를 끌어오는데 그치지 않고 매년 일반경비의 일부까지 채무로 조달하는 예도 있었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로 사회보장비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초긴축 재정운영과 증세문제가 검토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증세는 누구라도 피하고 싶다. 민주당도 선거과정에서 증세에 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다.

우선 연말까지 내년도 예산을 전면 재검토해 복지예산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예산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고 하나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음 참의원 선거 등 단기간에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정책을 이끌어 내기 위해 경우에 따라 국채발행이나 증세 등의 대책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기본적으로 보수당이면서도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안고 있는 당의 정책노선에 대한 근본적 검토와 함께 재정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집권당으로서의 정치력이 머지않아 시험대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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